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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부산무형유산의 기억과 전승- 부산고분도리걸립을 중심으로

발행일2024-06-01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부산무형유산의 기억과 전승- 부산고분도리걸립을 중심으로

김선영
부산여자대학교 아동예술무용과 전임강사 · 부산고분도리걸립 전수장학생

부산고분도리걸립이 간직한 부산의 기억
2024년 2월 13일(음력 정월 초사흘) 부산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충무동 새벽시장, 이른 아침부터 걸립패들의 악기 소리가 시장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 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한 부산고분도리걸립 지신밟기 행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부산고분도리걸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정우수 선생(1948년생.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8호 부산고분도리걸립 상쇠 및 풀이 예능보유자)은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유입된 풍물꾼들이 모여서 고분도리걸립을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지신밟기, 걸립굿을 해왔고, 걸립을 할 때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이 1860년대에 서구 서대신동에 세워졌다는 『시약산 산제당 약사』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고분도리걸립의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걸립굿이 일제강점기 동안 쇠퇴하였다가 정우수 선생의 말처럼, 전국의 풍물꾼들이 부산으로 피란을 오게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걸립지신밟기 소리의 달인이었던 유삼룡 선생(1898~1970)과 아미동에 거주하던 농악의 명인 이명철 선생(1905~1973)이 기능에 뛰어난 단원들을 모아 1952년 아미농악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다.
아미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었던 곳으로, 고향을 떠나 한반도의 끝자락 부산에 와서, 모르는 이의 무덤가에 기대어 사는 피란살이는 신산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 아미농악단은 재액초복(災厄招福) 혹은 벽사진경(?邪進慶)이라는 의미를 담은 신령스러운 풍물굿으로 이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일으켜 세워 줬을 것이다.

성주신 일대기를 자세히 묘사한 성주풀이, 용왕굿, 채상모 소고놀이와 들벅구놀이가 함께 병용된 춤사위 등 전국 각지의 기예가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고분도리(서대신동의 옛 지명)와 아미동에서 한 물결로 만나 되살아난 것이다.

이러한 아미농악에서 연희농악 구성으로 1980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6호로 부산농악이 먼저 지정받았고, 이후 부산 서구 일대에 예부터 행해오던 지신밟기를 걸립 풍물굿으로 발전시켜2011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8호로 부산고분도리걸립이 지정됐다. 부산고분도리걸립은 지신밟기에 들어가기 전 의례적 절차를 먼저 밟는데, 현재에도 그 터와 제당이 남아있는 서대신동의 당산에 가서 당산굿을 올리고 당산신의 가호를 농기에 받아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며 안가태평(安家太平)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다른 지역의 지신밟기에는 없는 과정으로 마을 주민 모두가 바다를 향해 축원하는 ‘용왕굿’을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부산의 서구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남항과 인접하여 다수의 지역민들이 어업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했고, 이에 배가 출항할 때 어부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굿’이 부산고분도리걸립 전체 연희에서도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고로 오늘날 부산 서구 대표 전통시장으로 자리 잡은 충무동 새벽시장에서의 부산고분도리걸립 신년 첫 지신밟기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1950년대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이른 새벽 배에서 내린 어류 등을 광주리에 이고 나와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충무동 새벽시장 상인들의 기억 속 새해 정초의 풍경에는 언제나 〈부산고분도리걸립패〉의 지신밟기가 있었다. 2024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장사가 잘되기를, 가정에 건강과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우렁찬 걸립패의 악기 소리와 상쇠의 풀이 “악귀 잡신은 물 알로 가고 만복수복(萬福修福)만 이리 오소”가 시장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그런 걸립패의 축원에 덩달아 어깨춤을 추는 상인들을 보면, 우리의 민속문화는 여전히 삶터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산 무형문화유산 전승, 멀어도 가야 할 길
과거부터 현재까지 소멸하지 않고,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부산고분도리걸립을 오롯이 전승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지역 공동체의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제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의 보전과 진흥을 통한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 그리고 국민의 문화적 생활 향상을 꾀하며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1962년 제정된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과 무형문화재 지원정책은 우리의 민속문화가 전승될 수 있는 기틀이 되어주었다.
2024년 현재 부산에는 국가무형문화유산 6종목, 시 지정 무형문화유산 25종목이 있으며 총 5개소의 무형문화유산 전수교육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산고분도리걸립은 부산시의 무형문화유산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사)부산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가 운영하는 구덕민속예술관에서 <부산농악>, <구덕망깨소리>와 함께 무형문화유산 종목의 전승 교육과 지역민을 위한 전통문화예술 향유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3년에 시행된 부산민속예술제, 무형문화재 달빛나들이 공연, 일상 속 공간으로 찾아가는 무형문화재 공연, 토요상설 전통민속놀이마당 공연 등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 향유 프로그램 다양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지난 5월 ‘2024 부산민속예술경연대회’가 개최되었다. 앞선 행사들이 우리 전통민속예술 고유의 흥과 멋을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공연의 형태라면 ‘2024 부산민속예술경연대회’는 그 결이 조금은 다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통민속예술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노력해 온 시 무형유산 전수학교 및 지역의 모든 전승단체(보존회)가 참여하는 경연의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1972년을 시작으로 연 1회 개최되고 있으며, 올해로 청소년부는 40회, 일반부는 52회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경연대회의 최우수 2개 팀은 부산시 대표로 전국대회인 ‘제65회 한국민속예술제’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과 지원금이 주어진다. 그러한 연유로 부산시가 지정한 무형문화유산 전수학교 학생들과 시지정무형문화유산의 전승을 책임지고 있는 각 보존회 회원들의 전승교육 성과 공유와 함께 민속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독려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행사라 하겠다.

일반부의 참여 단체와 출연인원은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청소년부는 2015년 26개팀 참여,
1,000여 명 출연에서 10여 년 만에 2024년 기준 10개팀 참여, 331명 출연으로 축소되었으며, 올
해 중등 교급은 단 한 팀도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14개 종목 중 청소년부는 특정 종목으로의 쏠림 현상과 전수학교의 감소로 7개 종목만이 출연하여 큰 우려를 남겼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큰 이
슈 때문일 수도 있으나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교육환경의 변화(대학의 예술 관련 학과 폐과),
무형문화유산 교육 콘텐츠 부재 등과 같은 복합적 요인으로 인한 결과로 보인다. 무형문화유산과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한 몇몇 학생들은 “재미없다, 촌스럽다,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 힘들
기만 하다,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우리 전통민속예술이 우수하다 한들 현장에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한 시대의 옛 흔적인 역사 교과서나 동영상으로만 기록되지 않을까.
아이 한 명을 키워내는데 지역사회 모든 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듯, 지역의 특색과 가치, 역사
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의 미래를 지키는 것은 기량이 뛰어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역의 전 세대가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 및 교육 콘텐츠1를
기획, 개발하여 무형문화유산의 전승 보존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할 때이다. 모든 마을의 구성원이
정초 지신밟기에 참여했던 그때처럼, 아파트 단지 내 아이들과 주민들이 다 함께 서로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며 사물악기 장단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미래를 꿈꾸길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먼 미래가 누려야 할 문화의 종(種)이기 때문이다.

부산무형유산,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