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간의 무한변신 - 영도의 문화복합공간
장혜원 쓰담 출판사 대표
살아가는 공간, 사라지는 공간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삶의 방식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들도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기도 하며 변화하고 있다. 사라지
는 공간을 볼 때면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기억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방인구의 감소로 학교나 지방자치단체 소유 시설이 유휴화되고,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로 폐산업시설도 증가하고 있다. 유휴공간이 증가하는 만큼 시대적 흐름을 두고 볼 것이 아니라 공간 활용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요즘 지역마다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이 있는데, 유휴
공간의 활용은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지역 경쟁력을 강화할 히든카드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공간
을 무너뜨리고 새로 다시 짓는 재개발과는 다르게 공간의 정체성을 반영해 리노베이션하기에 지
역의 상징적 의미를 재해석하여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문화를 만들어 지역의 미래 가치를 창출
하기 때문이다.
영도의 과거를 넘어 현재로
부산은 항만도시이며, 일제강점기 시대를 지나온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중 부산의 영도는 영
도만이 가진 지역적 헤리티지를 잘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영도도 시대의 흐름을 빗겨갈 순 없기에 다양한 형태의 유휴공간이 생기고 있는데 이 부분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찾아와 공간을 발굴하고 활용하고 있다. 영도 그 자체가 리빙랩이 된 느낌이다. 영도는 국내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조선소가 생긴 곳으로 조선업이 침체되면서 관련한 폐산업시설이 많이 생겼다. 폐산업시설은 유휴공간이 되기 전 부산을 이끌었던 주요 산업시설이었던 기억을 안고 있다. 이러한 유휴공간을 문화적 자원으로 인식하여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을 만들어가는 브랜드가 많다.
영도의 문화복합공간으로 자리 잡은 ‘무명 일기’는 1959년에 지어진 근대항만 보세창고를 개
조한 공간이다. 2018년에 오픈하여 카페로 운영하면서 문화 공연, 예술 전시 및 각종 커뮤니티 행사를 개최하며 지역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하고 있다. 영도의 지역성 특색을 지닌 공간을 리노베이션하고, 그곳에서 무형의 영도 지역의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고자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기에 그 가치가 크다. 대표적으로 특별한 경험형 미식 콘텐츠 ‘영도 소반’이 있다.
과거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삶의 흔적이 담긴 영도의 이야기를 건강한 음식을 통해 표현
하여 제작한 콘텐츠이다. 김미연 대표와 ‘무명 일기’ 프로젝트를 함께한 오재민 대표는 영도의 역사와 산업, 삶 모두를 담고 있는 봉래동 물양장의 바지선을 활용하여 해상정원 및 문화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도 동삼동의 노후 된 수리조선소 자리에는 방주 모양의 ‘피아크’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자리
잡았다. 마치 대형 선박이 육지에 정박하고 있는 모습인데, 배를 모티브로 설계해 내부에서도 마치승선한 느낌으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러한 기획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침체되었던 조선업을 몸소 느낀 부산의 수리 선박 기업 ‘제일SR그룹’에서 도시 문화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와 협업하여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영도 지역에 뿌리를 둔 ‘제일SR그룹’은 버려진 공간에 그룹의 정체성을 담아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피아크(P.ARK)는 Platform of ARK for creators의 줄임말
로 창작자를 위한 방주가 되겠다는 의미와 알파벳 그대로 읽어 ‘공원(Park)’이라는 것에서 모든 사
람들에게 열린 편안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피아크는 F&B를 넘어 문화, 예술, 전시, 축제
등 다양한 콘텐츠로 각자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한다.
함께 상생하기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2021년 진행했던 영도 문화도시 연결포럼 〈도시정책, 문화로 이어지
다〉의 다섯 번째 포럼의 주제가 흥미로웠다. ‘폐조선소, 멈춰진 역사에서 문화공간으로’라는 주제
였는데, 부산일보 2021년 2월 23일자 기사 “세금 때문에… ‘폐조선소 문화공간 전환’ 실패로 끝나
나”를 계기로 열렸다고 한다. 1998년 설립된 거청 조선소는 조선업 하락세에 2017년 조선소 운영
을 중단하고 문화공간으로 개조하여 2019년 3월부터 지역의 예술 공연 장소로 주목 받은 곳이다.
하지만 전시와 공연, 영화 촬영 장소 등으로 활용되던 곳이 재산세 폭탄으로 세금 제도에 막혀 식
품회사의 제조공장으로 된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유휴공간이 안정적으로 지
속적 활용되기 위해서는 민-관이 협력하고 명확한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보통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민간에서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례가 많은데 지역의 가치를 높여주는 만큼 공간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례 제정 등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