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도시’ 만들기
- 포용성과 포용도시
정현일
국립부경대학교 글로벌지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포용성의 시대
포용성(inclusivity)은 사회적 배제를 없애야 한다는 가치관, 접근법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경제적 발전에서 배제된 이들, 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다양한 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정책과 논의를 포함한다. 이러한 포용성은 세계화와 경쟁질서의 폐해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다. 세계화와 경쟁질서는 한편에서는 풍요를 가져다줬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배제된 이들을 양산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와 세계경제의 침체를 계기로 포용성이란
가치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포용성은 전 세계 보편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미 UN, OECD, 아시아개발은행,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하여 미국 행정부와 민주당, 포드재단, 록펠러재단, 로마 바티칸 등 전 세계 주요 행위자가 포용성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동아시아에서도 포용성은 중요 가치이다. 한국은 2017년 포용적 혁신국가를 국가 아젠다로 제시했다. 중국의 후진타오, 시진핑 주석, 일본의 기시다 내각도 포용성을 직간접적으로 수용했다. 포용성은 포용적 성장, 포용적 자본주의, 포용적 노동시장, 포용적 복지 등 다양한 개념과 정책을 낳으면서 전 세계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용성의 다양한 세계
그렇다면 포용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포용성의 사전적 의미는 누군가를 감싸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를 두고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떤 논자는 사회적 배제의 책임을 소수자 개인에게 물으면서 현재의 사회구조에는 면죄부를 준다. 이 경우 포용의 의미는 소수자를 재교육하여 ‘자립’, ‘갱생’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논자는 사회적 배제를 양산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구조의 희생자라 할 수 있는 소수자 지원을 포용으로 이해한다.
포용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정책도 다양하다. 어떤 논자는 소수자 개인의 도덕 교화나 취업 역량 강화를 제안한다. 다른 논자는 소수자의 기본권·사회권 보장이나 복지서비스 혜택, 참정권을 제안한다. 국가마다도 포용성은 다르게 해석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수도시설 확보, 참정권처럼 최소한의 기본권과 관련된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청년 실업자 등 ‘풍요 속의 빈곤’에 빠진 이들을 지원하는 것과 결부된다. 이처럼 포용성은 다양한 접근, 해석, 정책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포용성을 정치적 용어, 그때그때의 정책 기조 변화에 융통성을 발휘하는 ‘정책적 용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포용성의 특징과 강점
그럼에도 포용성‘들’이 공유하는 특징과 강점이 있다. 먼저, 배제된 이를 포용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성은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오늘날 배제된 이를 방치하는 약육강식의 논리는 지지받기 힘들다. 반면 배제된 이를 포용해야 한다는 이상은 너무나 당위적이고 단순하며 이해하기도 쉽다. 그렇기에 정치, 경제, NGO, 학계, 종교계 등 다양한 행위자가 포용성에 관심을 두게 된다.
둘째, 효과적이면서 현실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빈곤 문제의 원인을 경제적 요인에서만 찾곤 했다. 이에 반해 포용성은 사회-경제-정치-공간-환경 등 다양한 요인 간의 순환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열악한 주거 여건은 이동권과 신체건강을 악화시킨다. 이는 사회적 고립과 실업, 빈곤을 낳고 그 결과 이들의 주거는 점차 슬럼과 게토(ghetto)가 된다. 각 요인이 서로에 대한 원인이자 결과이다. 문제의 해결도 이들의 선순환에서 찾아야 한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기존의 정책에 비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하게 했다.
포용도시: 포용성과 도시의 만남
포용성을 활용해 도시 발전을 모색하는 도시를 포용도시(inclusive city)라고 한다. 세계화와 경쟁질서는 도시를 성장의 엔진으로 삼고 눈부신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불평등을 조장하고 다양한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에 포용성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도시는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차원을 아우르는 구체적 공간이자 정책적 실행단위이기에 정책의 기대 효과도 크다. 그러므로 포용성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도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도시 내 소수자의 역량을 강화하고 경제적·사회적 참여율을 높인다면 도시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할 수도 있을 터이다.
포용도시도 다양한 모습을 띤다. 대표적으로 유엔 해비타트는 도시권(the right to the city)에 기반하여 ‘모두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를 선언하고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는 포용도시를 제안했다. OECD는 시장경제의 혜택을 받지 못한 소수자나 실업자의 고용에 초점을 둔 포용도시를 제안했다. 국내에서는 서울, 부산, 인천, 광주, 수원, 대전, 안산, 창원 등 다양한 지자체가 포용도시를 추진했다. 국내 포용도시의 특징은 기존 사회구조에 대해 비판적인 비전을 보여주면서 일반시민, NGO와의 협력을 강조하나 그 토대가 기존의 도시정책이란 점이다. 이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많은 수의 복지기관, 의료기관, 교육기관이 형성됐다. 청년 취업, 노인 재취업, 외국인 적응, 예술 지원, 임대주택, 주거비 지원 등 각종 지원책도 늘었다. 이들 정책은 도시에 머물기 힘들었던 이들을도시에 머물 수 있게 했고, 소수자와 시민의 역량을 통해 문화 다양성과 도시 발전의 가능성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졸자 비율, 사회보험 가입률, 투표 참여율, 공원 접근성, 공공기관 CCTV 설치 정책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포용성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이 포용성 정책의 이름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이는 포용성의 함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며 기존의 도시정책을 포용성 정책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포용성 그리고 포용도시의 한계: 포섭을 넘어 진정한 포용을 향하여
현재의 포용성, 포용도시에 만족하지 않고 그 너머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사실 포용의 다른 번역어는 포섭(包攝)이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어떤 포용성은 소수자를 가르쳐야 할 대상, 시혜의 대상,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곤 했다. 이는 소수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억압과 통제, 동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동등한 주체 간의 포용이 아닌 소수자를 억압하는 포섭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포용성의 긍정적 함의와 한계를 인식하면서 그 너머를 상상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의 동등한 관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때, 도시는 우리에게 새롭고 대안적인 집합적 ‘작품(oeuvre)’으로 재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