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도로시, 어디까지 왔니?
- 베리어프리,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 대표 허경미 인터뷰
박소윤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장,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 겸임교수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와 관련한 첫 번째 법은 1981년 제정한 「심신장애자특별법」이었다. 이 법은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된 이후 76회나 거듭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이 장애인의 문화 참여에 대한 보편적 복지 보장이라면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2020)과 「문화예술진흥법」 제15조의 2항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장애인의 문화예술 창작활동 촉진을 보장하고 있다. 부산시에서도 2021년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지원 조례」를 전면 개정하여 예술에 있어 장애인들이 향유자를 넘어 적극적인 창작활동의 주체자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제
도 기반을 마련하였다.
부산문화재단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포용예술을 지원하고 있는데 <장애예술인 육성프로그램>이 그것이다. 2019년 이 사업에 선정되어 활동을 시작한 베리어프리 무용단,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 허경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소윤 대표님, 안녕하세요?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 활동에 대해 많은 분과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모시게 되었어요. 편의상 이 글에서는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를 도로시로 부르겠습니다. 도로시는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이 쓴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용단 이름과 관련이 있을까요?
경미 참여자들을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질문들을 했었어요. 그 중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 보신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발달장애인 참여자 한 분이 노란 선(도로선을 의미)을 따라왔다고 하셨어요. 그 대답을 듣자 문득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도로시가 친구들과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에머럴드시를 찾아가며 모험을 한 것처럼 우리도 이 만남을 통해 멋진 도전과 경험을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무용단 이름을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로 짓게 되었습니다.
소윤 도로시는 장애, 비장애예술인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단원이신가요? 아니면 전문가인 비장애예술인들이 교육자의 역할을 하시는지요?
경미 3년간의 <장애예술인 육성프로그램> 진행 시에는 장애인들이 교육받는 위치였지만 지금은 모두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고유번호증도 받았어요. 현재 발달장애인 한민기, 김유진, 이은애, 이지연, 정민수와 비장애인 박은지, 엄효빈, 정승환, 김민찬(2019~2021활동) 그리고 제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윤 도로시의 주요 활동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경미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은 한 해에 4개월 정도씩 교육활동을 가졌습니다. 그 시기가 코로나 팬데믹 때라 활동에 제한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진행하였습니다. 2020년에는 <우리 저기 갈까?>라는 작품으로 댄스 비디오를 제작하여 상영회를 가졌구요. 2021년에는 작품<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장애예술 테이블토크에 초청되어 공연하였고 또 작품<약속; 관계하다>로 부산문화재단의 장애예술 쇼케이스 공연을 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2022년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S) 공모에 선정되어 고양아람누리극장에서 공연하였고요. 그 외에도 굿네이버스 주관 ‘미드써머 드림’,부산문화재단 문화다양성의 날 행사 ‘함께 가는 길’에도 초청되어 공연하였습니다.
소윤 2019년에 시작한 데 비해 많은 활동을 하셨네요. 활동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경미 변화해가는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도로시를 운영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었습니다. 장애예술인에 대한 자격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일반 교육 참여자들과 어떻게 차별화된 교육을 진행할 것인가 같은 질문이었지요. 이분들이 처음에는 케이팝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인 줄 알고 오셨다가 나중에는 신체 움직임과 태도가 무용 예술 창작가로 변화해 가셨어요. 가장 큰 변화는 움직임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과 표현의 수용성이 높아진 점입니다. 강사진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을 특별하게 대해야 한다는 일종의 거리감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 거리감이 점차 좁혀졌습니다. 또 교육자로서의 역량, 즉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도움을 주는 줄 알았는데 도움을 받았고, 성장시키려고 했는데 스스로 성장하게 된 것이에요.
소윤 장애인 예술 활동 지원이나 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라 쉬운 일 같지만은 않기도 해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는지요.
경미 처음에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신체장애에도 유형이 있듯이 발달장애에도 유형이 다 달라서 그 특성에 맞는 수업을 이끄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높았어요. 다양한 특성을 가진 단원들과 함께 수업하는 어려움도 있었고요. 폭력성이 드러나는 단원도 있었는데 그게 그 유형의 특징이었던 거죠. 우리는 수업의 규칙을 정해서 풀어 갔습니다. 또 창의성이 수업의 목적인데, 그 바탕이 되는 지적?정서적 상상력이 서로 통하지 않아서 동작의 동기 부여에 있어 비장애인 수업과는 좀 달랐습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춤을 통해 정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좀 더디고, 축적이라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어요. 장기 기억으로 잘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상시적인 만남이나 프로그램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소윤 그런 어려움이 있으시군요. 혹시 장점이나 가능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경미 작은 규칙들을 굉장히 잘 지키십니다. 그래서 수업이나 춤의 표현에 있어 규칙들을 정하여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신체 움직임이 힘들 것이라고 짐작하고 가능한 덜 움직이는 동작을 부여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규칙을 정해 달리기를 했는데 정말 빠르게 달리시는 겁니다.
소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선입견, 즉 정신적?신체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의 인식적 한계였을 수도 있겠군요.
경미 맞아요. 장애인의 고유성 안에서 동작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 고유성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그분들을 가둔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 문화예술의 활동 가능성은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소윤 베리어프리 무용단 활동에 있어 실질적으로 필요한 제도나 지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미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활동에 있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비용은 지원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금이 없는 동안 비장애인 단원들의 노력으로 지탱은 했지만 모두 프리랜서 예술가인지라 유지에 고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활동에 있어 단순한 배려나 온정주의보다는 기회를 좀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시나 재단 행사 때 장애예술인 출연에 대한 쿼터 제도 같은 것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일정 분량은 장애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지요. 장애예술인들의 작품이 늘어나게 되면, 특수성이 돋보일 수 있고, 수요도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발달장애인의 경우, 당사자뿐 아니라 보호자들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분들이 작품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애예술에 대해 보다 섬세한 분류와 맞춤식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윤 부산문화재단은 장애예술인의 창작공간으로 온그루와 두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로시는 두구의 입주 단체로 활동하십니다. 두구 활동이 도로시의 성장에 도움이 되시는지요?
경미 두구라는 공간이나 지원이 있어서 좋으나 너무 외진 곳에 있는 점이 아쉬워요. 또 연습실이 없고 사무실만 있는 한계도 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목적에 부합하는 장애인 창작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소윤 지원 여부에 상관없이 도로시는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점이 참, 놀랍고 존경스럽습니다. 도로시의 춤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경미 장애인 단원들은 춤의 작업 과정과 결과에 대한 자존감이 누구보다 높은 편이에요. 독립된 무용단 운영에 대한 고민, 예술적 성취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로시의 친구들은 스스로 지능, 마음, 용기가 없다고 여기고 있는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였다. 그들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노란벽돌길을 따라 마법사 오즈가 사는 에머랄드시에 당도했다. 노란 선을 따라가는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는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까. 아니 어떻게 가게될까. 분명 녹록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장애는 또 다른 능력이며, 예술에 있어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의미 없다는 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는 고민과 땀 흘리는 노력의 시간이 그 길을 채워갈 것이다. 우리 도시의 실질적인 응원과 지원이야말로 바로 그 춤길의 ‘노란 선’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기꺼이, 노란 선이 되어 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