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문화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길을 열다
이미연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수도권이 블랙홀이 되어 사람, 돈, 일자리 등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집중의 폐해가 요즘만큼 여러 측면에서 많이 언급되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수도권 중심주의 아래 특히 지역 청년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지역은 노인과 빈집만 남아 인구감소와 함께 지역소멸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은 상대적으로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지역민들의 염원을 더욱 간절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으로 활동하며 그간 만나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지역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한결같은 점은 지역 어디나 감소와 소멸, 위축, 격차, 불균형을 넘어 지역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고 지역을 삶터로 지키기 위해 눈물겹도록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핵심에 지역문화 활성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제 문화는 지역의 자산을 활용한 인프라 개발로 생활인구를 늘이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상생방안을 추동하는 주요한 힘이 되고 있다.
올해 방문했던 곳 중 단연 인상적인 지역은 신안군이다. 신안군은 면적이 서울시의 22배이지만 인구는 38,124명에 불과하며 그중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41%로 인구소멸 고위험지역 1위이다.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유인도는 76개이며 재정자립도는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신안군을 1004섬으로 명명하고 1섬 1색깔 브랜딩을 추진한 박우량 군수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통해 신안의 기적을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보라색으로 물결치는 퍼플섬(반월?박지도)의 인구는 136명(2022년 하반기 기준)에 불과하지만 UNWTO 2021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지정되고 문체부 한국 관광의 별 ‘본상’(2021)을 수상하며 2023년 39만 1천 명이 방문하는 지역이 되었다.
기획단을 맞이하는 공무원들의 복장은 모두 산뜻한 보라색이었으며 군수가 직접 공휴일도 마다 않고 신안의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설파하며 섬 곳곳을 안내하는 모습에서 정말 마음으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순례자의 섬(기점?소악도), 맨드라미의 섬(병풍도), 수국?팽나무의 섬(도초도) 등 인구수가 적은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매년 20%이상 증가하고 있다. 꿈을 섬에 입히고 문화?예술이 꽃피는 섬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안좌도 플로팅 뮤지엄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야나키 유키노리, 비금도 바다의 미술관에 전시되는 세계적 작가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우리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신안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안군 정책 추진의 핵심은 주민 역량 강화, 주인의식 고취, 지역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감 함양 등을 통해 올바
른 방향으로 지역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를 위해 최고 수준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조성해서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고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지역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21년 처음으로 5년 주기 인구감소지역 89곳이 지정되었다. 가장 많은 지역이 포함된 곳은 경북, 전남, 강원이다. 경북과 전남은 16개의 시군이 포함되었으며 강원의 경우 11개 지역이 포함되었다. 부산은 동구, 서구, 영도구가 지정되었다.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보고된 인구감소 관심지역 안에 부산의 중구와 금정구가 포함되었다. 인구감소지표는 연평균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순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 비율, 유소년 비율, 조출생률, 재정자립도 8가지를 근거로 삼는다. 인구감소지역은 인구소멸기금 활용 등을 통해 지역생존을 위한 사활을 걸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방문했던 영암군에서 ‘강해영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었다. 강해영은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경제위기를 겪는 이웃한 세 지자체 강진군, 해남군, 영암군이 주인공이다. 인구 33,000명 강진군, 인구 65,000명 해남군, 인구 53,000명 영암군이 ‘뭉쳐야 산다’를 기치로 연결, 연계, 협력 전략을 세우고 관광을 통한 생활인구 창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년 동안 구상해서 현재 실행중이며 세 지역 모두 지역 문화관광재단이 협력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신청시 세 지역이 협력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 예산확보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8억 5천(3억/3억/2억5천)으로 연계 관광상품 개발, 관광인프라 조성을 위한 투어버스 진행, 당일 시티투어 상품 운영 등 생활인구 확대의 패턴을 과감하게 바꾸는 전략을 진행중이다. 영암은 ‘5만 2천 혁신디자이너와
함께’ 라는 브랜딩으로 군민 모두가 디자인하는 지역 전략을 내세우고, 해남은 ‘군이 회사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민간기업 혁신을 이끌어내고 마을기업 ‘가와바전원플라자’를 설립해서 국토부 지역활력타운 사업 연계로 프리미엄 특산물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강해영프로젝트는 인구감소지역이 각자도생을 하기보다 행정적, 경제적, 자원적, 문화적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관광시장 및 인프라, 시스템을 연결하며 개별적인 군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군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서 협력과 더불어 선의의 경쟁 속에서 지역소멸을 막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로젝트가 좌초하지 않고 더욱 공고한 연결과 협력을 통해 인구감소지역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선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문화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문화도시’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다. 2019년 첫 선정을 시작으로 그간 4차에 걸쳐 총 24개의 지자체가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로 도시를 바꾸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중 1차 문화도시 7곳(경기 부천시, 강원 원주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제주 서귀포시, 부산 영도구)은 5년간의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문화도시는 지역 고유의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여 도시 브랜드를 창출하고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발전 기반 마련을 위한 지역문화 균형발전 정책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문화진흥법」 제 15조 1항을 근거로 한 법정도시이다.
최근 24개 문화도시 중 인구감소 지역 4개 지자체(충남 공주시, 경남 밀양시, 전북 고창군, 강원 영월군)의 사업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변화를 일구고 있는 곳이 영월이다. 강원 영월군은 인구 37,000명, 고령화 비율 34.6%, 재정자립도 13.48%으로 폐광으로 인해 일자리 정주여건이 취약하고 지역인구 유출 가속화로 지역사회 활력이 저하되며 새로운 성장동력 발
굴이 절실한 지역이다. 굽이굽이 태백산맥과 동강에 둘러싸인 영월은 예로부터 첩첩산중, 육지고도라 불리던 산촌이며 근현대사 속 영월은 석탄광산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도시화를 이끈 중추 도시로 지하 막장에서 위험에 노출된 채 꿈을 캐내려고 노력한 광부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도시였다. 폐광으로 삶의 리듬이 무너진 영월은 단기간에 지역 경제가 붕괴되고 도시 활력이 확연히 감소되었다. 하지만 문화도시로 지정되면서 일상의 삶을 문화로 사람?활력?공간 충전을 통해 지역에 정주하면서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있다. ‘석탄광산에서 문화광산으로’를 내걸고 영월군은 지역소멸 대응형 문화도시 모델로써 문화정책이 도시정책의 중심으로 전환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주민 참여 기반으로 다양한 민간과 공공분야 협업 체계를 구축해 실질적인 성과를 축적하고 있는 중이다. 원스톱 문화도시 정책 지원을 위해 문화관광과, 교육체육과는 물론 기획감사실에서 여성가족과까지 전방위적으로 타 부처 사업을 연계해서 시너지를 창출하는 부분은 문화정책이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 과제 실행에 있어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를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정책으로 기존 문화도시 사업 대비 권역별 성장과 실질적 발전 성과를 강조하는 광역형 선도모델로서 ‘대한민국 문화도시’ 총 13곳이 지정되어 2024년 예비사업을 실행 중이다. 지역 고유의 문화 자원을 활용한 차별적 도시브랜드 창출로 도시의 경제적 발전 및 지역주민 문화향유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역별 3년간 최대 200억 원(국비 100억원) 지원이 이루어질 예정이니 기존 문화도시 대비 연간 지원액은 거의 2배가 되는 셈이다. 기존 문화도시와 다른 점은 지정도시 전체 및 인근권역을 사업범위로 하면서 인근 지역주민?예술인이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는 광역 연계형 사업을 추진하게 하여 권역별 문화균형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다. 특히 기회발전특구, 교육발전특구, 도심융합특구 등타 특구와의 연계방안을 찾아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면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로 열어가는 지역균형발전의 길은 시민 삶의 행복과 직결된다. 문화정책이 도시정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