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되 함께 가는 지역문화 창업
박소윤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장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 겸임교수
창업정책의 방향
창업은 최근 일자리 정책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고용유연성을 강화하는 기업 경영은 이전 세대가 간직하고 있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에 변화를 가져왔다. 취업 문이 좁아졌을 뿐 아니라 육아 등 개인적인 요인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외부의 요인으로 중도 퇴사가 발생하기도 하며 정년 이후의 일자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단 청년 일자리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세대의 일자리 해결 방안으로 창업 지원사업과 그와 관련한 교육프로그램 지원, 네트워크와 플랫폼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창업 정책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 지원이 주를 이룬다. 21세기 전후로 제조업 기반 산업은 소셜미디어와 같은 정보 기술 기반 산업, 대중가요, 영화와 같은 기술 기반 문화예술산업과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으로 전환되었고 이들 기업의 글로벌시장 진출이 활발해졌다. 각국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 스타트업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빠르게 성장, 발전하는 기술 기반의 창업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부터 숙고하면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역문화 창업에 대한 정책을 다루고 있다. 바로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 위기가 이 연구의 사회적 배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지역 청년들이 기술 창업 인프라가 구축된 수도권으로 유출되면서, 지역의 활기와 생산성은 더욱 약화 되었기에 지역 소멸 문제에 대응할 방안으로 지역문화 창업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문화 창업이 단순히 산업이나 경제의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서 삶의 질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았다. 지역문화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특색과 개성을 전제로 하는데 각 지역의 문화중심지, 청년 인구 접근성이 좋은 곳, 걷기 좋은 저층의 가치 있는 오래된 건축물, 지역 가치를 발굴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를 창업의 주요 자산으로 보면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문화 창업정책 방안
보고서는 지역문화 창업 정책 방향 제안을 위한 주요 쟁점을 정책 대상, 창업 교육과정, 창업 네트워크 구축, 투자 및 융자 제도 지원으로 도출하였다. 이에 기반하여 향후 정책 참여 대상을 다양한 연령대, 고용 취약 계층, 외국인 등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과 지역 규모가 작을수록 보다 파격적인 지원을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역문화 창업의 경우,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 감각이나 관계 자본과 같은 무형의 자산이 축적되어 발휘되어야 한다는 특성과 이로 인해 초기 성장 속도가 비교적 느린 점에 대한 이해도 제고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전문 투자 시스템과 지원방식이 필요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과 활성화를 위해 지역문화 창업 및 관련 정책에 특화된 펀드 조성도 제안하고 있다. 또한 개별 창업 사업체 발굴 지원모델과는 독립된, 창업 팀 결성을 통한 통합지원방식을 제시하면서 일본, 독일, 미국 세 나라의 창업정책에서 시사점을 발굴하고 있다.
일본, 독일, 미국 창업정책의 시사점
청년층의 수도권 유입으로 지방 소멸에 직면한 일본은 2014년 9월 도쿄 일극 중심을 시정하고 지방의 인구감소를 막아, 일본 전체의 활력을 높이고자 하는 지방창생(地方創生) 정책을 실행할 ‘마을 사람·일 창생 본부’를 설치했다.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은 지역에서 생산성이 높고 활력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중점적 관심을 기울였는데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기업의 지역 연계 강화, 인구의 지방 이주 유인, 지방대학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또 지난 아베 내각은 지역의 자립적인 역량 강화를 위해 세 가지 지원체계를 구축하였다. 지역 경제 분석체제 제공, 인적자원 지원 강화, 재원 지원체계이다.
일본의 지역 기반 창업 생태계는 창업 초기 단계부터 정부와 민간이 강력한 민관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창업가들이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조건을 부여하였다.
독일의 경우,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의 원칙과 사회적 형평 원칙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이기에 지역 기반의 독일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수평적 관계를 갖는다. 이는 청년들의 지역정주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독일의 균형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독일연방경제에너지부가 2007년 연방 문화미디어 특보와 함께 문화창조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용 창출 잠재력 증진을 위한 목적으로 운영한 ‘문화창조경제 이니셔티브(Initiative Kultur-und Kreativwirtschaft)’의 경우 독일 문화창조경제 분야 사업체의 매출 증가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독일연방경제에너지부는 독일 액셀러레이터(German Accelerator)라는 새로운 창업 지원과 성장을 돕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여성, 청소년들에 대해서도 기업가 정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연방정부 주도의 정책 외에도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이 기업 돕기(Unternehmen helfenUnternehmen) 프로그램을 통해 신생 창업 기업이 서로 협력하여 시장이나 판로 개척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민간기업과 대학도 교육, 투자 등의 방식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 정부의 창업 지원정책의 특징은 이 와 같이 다양한 주체들 간의 협업을 통한 지원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미국의 창업 지원정책은 스타트업 아메리카 이니셔티브(Startup America Initiative)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의 국가혁신전략, 스타트업과 같은 혁신적 기업에 대해 창업 지원을 하고 있으며,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 중소기업청의 스케일업 아메리카 이니셔티브(ScaleUp America Initiative)는 창업 초기 단계 이후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창업 지원정책은 창업 생태계에 전략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에 중점을 둔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어린 창업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하였고, Intel, IBM, HP, Facebook과 같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위 세 나라의 창업 정책을 살펴볼 때 독일과 미국 창업 정책에 있어서는 기술 기반 창업 지원 성향이 뚜렷하였다.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대학 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독일 EXIST 프로그램, 미국의 스타트업과 같은 혁신적 기업에 대한 창업 지원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전제한 기술 기반 창업의 경우, 청년들의 수도권 유입 가속화를 조장하므로 지역문화 창업 연구의 방향과는 다소 부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기업, 민간, 대학 등이 창업에 대해 전략적으로 협업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주도력이 늘고 지방 분권이 안정화된 측면이 있어 적용에 있어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으나 지역 소멸이라는 과제에 대응하여, 지역문화 자원을 유기적인 민관 협력 네트워크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하겠다.
지역문화 창업 정책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지역문화 창업은 지역의 고유한 문화, 산물과 같은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한 것으로 주체자를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칭하듯이 단순 사업이나 장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감수성, 지역의 역사성, 고유한 문화를 바탕으로 지역의 가치를 소비자와 나누고 확산하는 것이므로 정주 가능한 일자리 조성, 공동체의 라이프스타일 향상, 환경과 생태계를 포함한 지속 가능한 지역 성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느린, 성찰과 합의의 과정이 될지도 모른다.
보고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여러 산하기관에서 창업 지원사업과 전문인력 양성사업들을 하고 있으며 지역문화 정책 분야에서는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지속 운영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2023-2025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 지원사업 지역주관기관 공모계획(2022.12)에 따르면 전국 10개 권역에 양성기관을 지정하여 연간 4,000만원에서 6,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었고, 실제 서울·인천권에 도봉문화원, 경기권에 의정부문화재단과 평택시문화재단, 강원권에 춘천문화재단, 부산·울산·경남권에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울산문화관광재단 7개소가 선정되었다. 권역단위 전문인력 양성의 규모로는 턱없이 적은 사업비이다.
이 와 같은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중앙 단위에서 지역문화 창업에 대한 환기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의미 있으며, 향후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넘어 문화체육관광부의 본격적인 시행정책과 사업을 기대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역의 현안이 중앙의 지역문화 창업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문제에 대해 지역과 중앙은 밀도 높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기술 기반이건, 지역문화에 대한 것이건 위 세 나라의 사례가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