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위기, 예술인의 몫은 존재하는가?
김상철 /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
전대미문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아주 오랫동안 21세기 문명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각인될 공산이 커졌다. 사실 2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꽤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폭발적인 전염속도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집단 감염은 패닉에 준하는 충격을 주었고 일상을 떠받치던 다양한 골조는 흐물흐물 녹아져 내렸다. 물질적인 육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간의 유물론을 떠올리면 일상의 붕괴가 곧 생활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 당연하다. 특히 위기는 사회에서 취약한 부분을 가장 아프게 하기에 차별적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예술, 예술인의 상황을 묻는 건 이제야 발견하게 된 어떤 사실들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고통스럽게 다시 직시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상성의 붕괴와 공공적인 것의 폐쇄
가장 일상적인 것의 풍경은 가장 관습적인 것에 가깝다. 약속을 하고 만나고 때가 되면 모이고 또 이동하는 것이 그렇다. 위기는 이런 것들을 ‘자가 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로 간단하게 붕괴시켰다. 얼굴을 맞댄 일상이 가장 취약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한 것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일상의 붕괴와 더불어 견고하게 놓여 있던 공공적인 것이 폐쇄되었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복지관이나 도서관이 무기한 폐쇄되었다. 청소년 시설이나 보육시설도 폐쇄되었다. 적어도 일상의 붕괴가 공공적인 것의 빠른 폐쇄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공공적인 것의 폐쇄가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 학생들은 여전히 학원으로 몰려가고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은 동네 공원에 등장했으며 체육시설의 빈자리는 학교 운동장이 대신하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공공적인 것의 후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고 어쩌면 공공적인 것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공공적인 것의 책임 회피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작년 연말부터 예정되어 있던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규모가 큰 것들은 상업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예술인들이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것은 공공적인 것의 폐쇄에 의한 것이다. 잇단 코로나19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2월 20일 자로 문화예술계의 피해 구제를 위해 기존 생활안정자금융자사업 내에 코로나19 긴급생활자자금 융자를 실시하기로 하고 기존 예산에서 30억 원을 우선 배정했다. 3월에 실시된 해당 대출은 신청액만 43억 원을 넘기고 종료되었으며, 여기에 추가로 40억원을 추가로 배정해 신규 대출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논의 과정에서 쟁점 중 하나는 코로나19에 의한 피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라는 부분이었다. 최초 안에는 어떤 형태의 계약이든 당사자의 확인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하지만 쟁점이 있었다. 상대방이 공공기관일 경우에 그와 같은 확인이 용이하겠는가 라는 점이었다. 정부 입장에서 코로나 19에 따른 피해가 민간 내의 민-민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 예술인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민-관 관계에서의 피해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코로나19 사태의 위기를 진단하는 정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존중감 없는 대책들
안타까운 것은 다양한 문화기구들이 대책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하나같이 예술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를 테면 지역의 기초문화재단들은 예정되어 있던 예술지원 사업의 시기를 앞당겨 실시하는 방침을 발표했는데 작업을 할 수 있는 현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공모사업의 확대가 실효성 있게 느껴질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별로 실효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티켓 1+1 지원 정책이 재탕되었다. 한쪽에서는 공연장 내에 관객들이 코로나19에 걸리게 되면 구상금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 나오는 와중에 다른 한 쪽에서는 공연을 더 보라는 지원정책이 나오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온다. 급기야 티켓 1+1 정책을 포함한 공연 관람료 할인 정책은 발표된 지 하루 만에 연기되는 촌극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인 지원정책 중 현금지원 정책에 가장 가까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준비금 사업에는 1만 4,803명이 몰렸다. 작년에는 4,970명 수준이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올해 사업규모가 커져서 상반기 6천 명, 하반기 6천 명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특정한 지역에서 신청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전년 대비 3배에 가까운 지원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예술인 전체가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이고 영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술인소셜유니온 등이 포함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라는 문화예술인 단체는 ‘창작준비금을 지금보다 2배에서 3배 정도 늘려서 예술인들의 생활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예술인에 대한 지원정책이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을 보여준다. 우선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 말고 지급하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상반기에 실시하고자 했던 공모지원사업비를 창작준비금 성격의 지원금으로 전환해서라도 지급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상반기에 집행하지 못하는 재원은 하반기에라도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예산을 밀어내기 위해 무리하기보다는 예정되어 있던 사업계획의 성격을 바꿔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예술인들이 어떻게 해서든 상반기를 버텨낼 수 있어야 하반기 사업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시급성을 고려해 가장 빠르게 지원하는 것이 맞다. 가장 간단하게는 공연이든 축제든 예정되어 있었다면 해당 재원만큼은 당초 출연 당사자에게 지급하면 된다. 별다른 선별과정이 있을 필요가 없다. 적어도 공연 취소가 예술인의 귀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이에 대해 약속되었던 비용을 지급한다는 건 ‘예술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예술인의 몫은 권리
최근 위기 상황을 맞아 국가마다, 도시마다 다양한 예술인 지원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온라인을 통해서 그동안 축적한 공연 등의 영상뿐만 아니라 예정되어 있던 공연 영상도 제공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연기된 프로그램에 대해서 사업체와 예술인에게 비용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보스턴 시는 예술가 지원기금을 긴급하게 편성해서,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모든 공연, 낭독회 등의 행사 참가비와 취소된 회의나 레지던시, 작업과 연관된 여행비용까지 500달러 범위 내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또 수업이나 강좌의 취소로 손해를 본 예술가와 부업을 잃은 예술가들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사람 관계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때가 위기의 때이듯이, 예술인 정책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 역시 위기 때다. 현재까지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내놓고 있는 대책들은 공공이 여전히 예술인의 문제에 대해 제3자의 위치에 있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재 위기에서 등장하고 있는 예술인의 위기는 공공과 예술인이 공동으로 당사자임을 전제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좀 더 현장의 예술인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예술인의 몫을 만들어 건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다른 사회의 부분에서는 다양한 몫들의 분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까지 적어도 20~30조에 가까운 정부의 금융, 재정지원 정책이 쏟아졌는데 여기에 예술인들의 몫은 어디에 있는가.
위기에 함께 버틸 수 있는 몫을 요구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다. 늦었지만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