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치유하는 예술활동 〔극단 자갈치 “복지에서 성지로”〕
손재서 (극단 자갈치 단원)
2020년 5월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 사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등에 대해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게 하는 <과거사법>이 통과되었다. 926일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 온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최승우 씨와 한종선 씨가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는 순간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을지 감히 나는 알지 못한다.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된 근거는 국가가 제공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가 그것이다.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이 훈령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이었다.
내무부 훈령 410호. 말 한마디였다. 법령도 아닌 훈령. 이 말 한마디로 12년 동안 2~3만 명의 사람들이 끌려가 인권유린을 당했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람만 513명이 사망하였다.
고위 공무원 혹은 대통령의 한마디 말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에 비해 진상규명을 위해, 혹은 자신의 과거가 부랑인이 아니었음을, 자신이 공권력에 의해 끌려가 인권유린을 당해도 괜찮은 사람이 결코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오랜 세월 국회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피켓을 들고 926일 동안 차가운 천막에서 노숙을 해야 했던 두 사람의 말은 얼마나 힘겨웠을까?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을 알려내는 ‘복지에서 성지로 1’
극단 자갈치는 ‘지역민과 더불어 우리의 문화를 가꾸고 키워나간다’는 생각으로 1986년 만들어진 단체이다. 극단의 실제적인 창단공연은 1987년 ‘복지에서 성지로’라는 작품이었다. 그 해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유린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고 국회 조사단이 파견되어 조사를 벌이기 시작하자 자갈치 단원들은 주례동 형제복지원으로 달려가 현장 취재를 하고, 신문기사를 모으고, 밤낮으로 의견을 나누며 대본 작업을 하고 공연을 만들었다.
70년대 유신독재 속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마당극(굿) 운동의 기본정신은 상황적 진실성, 현장적 운동성, 집단적 신명성, 민중적 전형성을 삶의 현장에서 누려보게끔 하는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 언론통제로 인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가 막혔을 때, 마당극은 대안 언론의 역할을 맡아 가려진 진실에 접근하는 공연을 만들어왔고, 극단 자갈치도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해왔다.
아울러 “복지에서 성지로”는 언론을 대신하는 역할에 집중된 작품만은 아니었다. 1987년은 6월 항쟁의 결과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된 해였으나, 양김의 분열로 인하여 다시 권력을 군부 출신의 후보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공연의 3마당은 외부의 도움으로 복지원을 탈출한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다시 경찰에게 잡혀간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에는 민중들이 정신을 차리고 앞날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말 그대로 ‘복지원’에서 ‘성지원’으로 장소이동만 하고 말 것이라는 메타포를 담은 결말이었다. “복지에서 성지로”는 1987년 부산 YMCA와 부산대 넉넉한터 공연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 미리내 소극장에서 열린 제1회 민족극 한마당에 출품하였으며, 이후 많은 대학과 생산현장에서 공연되었다. 초연은 채희완 선생님의 연출로 제작되었고, 이후 1999년 전병복 연출과 2007년 손재서 연출의 작업으로 새로이 제작되었다. 10년 주기로 다시 제작되어 배우들에 의해 새로운 의미들이 표현될 만큼 풍성한 작품이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 낸 ‘복지에서 성지로 2’
이 작품은 2013년 서울에서 열린 변방연극제에 임인자 예술감독의 초청으로 공연 제의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극단 사정으로 공연은 만들어지지 못하고 공연 영상만 초청 상영되었다. 그 해의 변방연극제는 당시 국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오던 한종선 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이 주제로 다루어진 행사였다. 우리가 만들었던 공연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알고 싶어 하였는데도 우리는 이에 화답할 수 없었다. 당시의 미안함은 마음 한 편에 응어리로 남았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우리는 한종선 씨와 임인자 예술감독을 극단으로 모셔 이야기를 듣고 “복지에서 성지로 2”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제작에 들어갔다. 당시 영상으로 전작을 감상한 소감을 물었을 때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으셨지만 극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이 희화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작품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한 극적장치로 인해 당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속편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이어가지 않고자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다. 당시 출판된 한종선 씨의 책을 함께 읽고, 자료를 모으고, 피해자들을 찾아가 면담을 하며, 그분들의 심경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작업에 임하였다.
전작이 형제복지원 내에서의 당시 사건을 주로 다루었다면 “복지에서 성지로 2”는 그분들이 사회로 복귀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1마당은 당시 꼬마였던 피해자가 어른이 된 후 박인근 원장의 집에 잠입하여 ‘왜?’ 라는 질문을 던지다 잡혀 다시 감금당한다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아직도 세상은 너희들의 이해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늘 뒤를 조심하며 살아가라는 의미를 품은 일종의 서스펜스 활극물이었다. 2마당은 전작에서 다루지 못했던 여성 피해자의 복지원 내에서의 참상과 복지원을 탈출하고 싶은 끝나지 않는 꿈에 관한 내용이었으며, 3마당은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피해자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앞날을 준비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주말 공연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을 모시고 공연을 진행하였다. 극 중 인물인 박인근 원장을 향해 분노를 표현하시거나,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지켜봐 주신 피해자분들과 함께한 공연은 또 하나의 뜨거운 현장이었다. 그 어떤 공연도 이때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누리진 못할 것이다.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피해자분들이 전해주신 질타와 감사의 인사는 극단의 미래에도, 광대들 자신의 예술적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에도 큰 자양분이 되었다.
2014년 "복지에서 성지로2"(부산 민주공원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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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내어주는 이야기로 치유하고 치유받는 광대의 역할에 대하여
극단 자갈치는 창단 이후 형제복지원 사건뿐만 아니라 노동현장의 이야기, 공해문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전쟁 이후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해왔으며, 근래에는 부산특산품 어묵(오뎅) 이야기와 영산줄당기기 이야기 등을 다루며 소재의 다양성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근저에는 늘 지역민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다루려는 정신이 깔려있다.
넓을 광(廣)에 큰 대(大). 광대라! 광대는 가진 말과 재주로써 세상을 놀이판 위에 올려놓고 노는 사람이다. 광대가 가진 말은 위선자들이 가진 말에 비하면 얼마나 힘없이 느껴지는가? 또 광대가 늘어놓는 이야기에서 당하고 사는 사람들의 말에 비하면 얼마나 허망한가? 하지만 광대들의 말은 한편으로는 그들을 향해,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들을 향해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이 자신을 살게 하고 세상을 살만한 것이게 한다.
사람들이 직업을 갖는 여러 이유 중 한 가지가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광대들은 예술을 통해 사회를 치유하려고 노력하지만, 알고 보면 사회가 내어주는 이야기로 인해 자신이 치유 받으면서 넓고 큰 세상을 향해 한 발 나아가 보는 것이 그들의 직업적 숙명일 것이다.
극단 자갈치의 ‘복지에서 성지로’ 작품을 필두로 하여 형제복지원 사건은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그려졌다. 특히 2012년 실제 피해자인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대책위 대표의 책 ‘살아남은 아이’가 출간되면서 형제복지원 문제는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다양하게 예술작품에 조명되었다. 2018년에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인권연극 릴레이의 일환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직접 출연한 연극 ‘편육’을 비롯하여 연극 ‘못찾겠다 꾀꼬리’가 극단 자갈치 신명천지 소극장에서 열렸다.
<형제복지원 소재 주요 예술작품> 1987. 연극 ‘복지에서 성지로’ (극단 자갈치, 채희완 연출) 1999. 연극 ‘복지에서 성지로’ (극단 자갈치, 전병복 연출) 2007. 연극 ‘복지에서 성지로’ (극단 자갈치, 손재서 연출) 2012. 책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지음) 2012. 연극 ‘해피투게더’ (떼아뜨르 봄날, 이수인 연출) 2013 실험다큐극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 (제15회 변방연극제 초청작) 2014. 연극 ‘복지에서 성지로 2’ (극단 자갈치, 채희완 연출) 2018. 연극 ‘편육’ (극단 수정식당, 진준엽 연출) 연극 ‘못찾겠다, 꾀꼬리’ (극단 프로젝트 업라이트, 한승훈 연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