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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치] 정치는 예술을 대신할 수 없지만, 예술은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

발행일2020-06-15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정치는 예술을 대신할 수 없지만, 예술은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

 

                                                                                     서은숙 (부산진구청장)

 

우리 삶의 기본인 의식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마도 정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잠깐, 사전에 나와있는 정치와 예술의 정의를 찾아보면,

 

정치: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예술: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과연 이 두 단어는 어느 지점에서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접점의 경계선에서 예술과 정치는 해묵은 논쟁을 진행해 오지 않았을까? 예술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예술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허용의 문제인가? 당연한 것인가? 등등..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에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역사가 있고, 밀레의 <만종>에는 당대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있다. 이를 순수/참여로 논하는 자체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가와 그의 작품이 역사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 또한 마찬가지다.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에 독재와 비민주적 행태에 대항하여 많은 예술인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재와 주제의 편향성으로 인한 작품이 가졌던 한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사랑받는 작품들이 있다. 우리 모두는 싫든 좋든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공간에 살면서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무관심으로 이를 부정하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이 작은 단위의 정치 형태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피카소<한국에서의 학살>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하고 거리를 둔다고 한들, 우리는, 불가피하게 정치적 동물이며, 우리가 하는 모든 언어와 행위는 정치적 산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연 예술가도 포함된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그것이 호응 관계인지 무관한 관계인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예술의 정치적 행위가 얼마나 의도적(혹은 의식적) 인가 혹은 비의도적(혹은 무의식적)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 인간은 가치관이라는 상자에 갇혀 있다는 점, 그리고 정치란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번 감행된 예술 활동과 정치 사이의 고리를 완전하게 끊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예술과 정치가 만나는 접점은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진 예술작품을 통해 우리는 삶의 고단함과 피로를 풀고 위로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개개인의 삶은 조금 덜 피로하지 않을까.

 

코로나 19로 전 지구인들이 감염병에 시달리고 있는 요즈음, 정치가 어떻게 작동되느냐에 따라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절망에 비틀거리는 사람들에게 손 내밀 수 있는 것은

정치와 예술이 함께 공통으로 지향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1945년 영국에서는 예술 평의회를 창립하면서 예술을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그 유명한 팔 길이 법칙(Arm's Length principle)”을 주장한다.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슬로건은 지금도 예술행정의 큰 틀을 만드는 유용한 원칙으로 자주 인용된다. 예술과 정치 사이에는 긴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광의의) 정치를 외면하는 예술도, 예술을 외면하는 정치도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부산진구는 올해 7부산진구 문화재단을 발족한다.

예술과 정치의 아름다운 콜라보로 부산진구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좀 더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의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름다운 예술을 향유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선택이다.

서은숙,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