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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장애] 그냥 내게도 예술이었다.

발행일2020-08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그냥 내게도 예술이었다.

 

우정아(한국장애인복합문화센터장)

 

내가 예술을 느끼고 즐기고 감동하는 것은 본능이었다.

나의 본능!

본능을 무엇이다라고 정의해내는 것이 오히려 사족처럼 여겨진다.

그냥 내 마음속에 있다가 어느 날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며 내 마음 안과 밖을 차지하며 나온 것이다.

20년 넘게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사로 실천했던 순간들이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을 위한 설계의 시간이 아니었나 회고해본다. 그 순간도 내가 원하고 만들어간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런 내게 발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예술 경험들은 단호하게 내 삶을 바꾸어 버렸다.(사실 단호하고 쉬운 결정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사회복지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내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너무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천천히.

예술가들의 에너지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각각의 색깔이 너무 달랐고, 그 에너지에 대한 경험은 내 에너지의 총량이 부족할 정도로 강하게 점철되었다.

이렇게 나의 인생 2막은 시작되었다.

자유, 생경, 신기함, 도전, 격정, 조화, 감동, 새로움, 불안, 두려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시행착오투성이인 나의 연결의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복지, 예술, 장애예술인, 장애인 예술, 예술인 등등으로.

장애의 경계를 넘어서는 예술의 힘

 

내가 장애인 예술 지원 사업 혹은 장애인복지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다 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나도 사실 잘 모른다. 어떻게 사람과의 만남을 일반화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도 부지런히 알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예의 바른 태도로 물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예술의 힘은 그렇게 묻지 않아도 사람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그 사람을 알게 되기도, 위로받게도 한다. 자연스럽게 연결이라는 지점이 생긴다.

예술은 장애 유무를 떠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작품을 보며 감동의 지점을 나누고, 예술이 본인의 삶에서 의미하는 부분을 여러 표현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예술 중매쟁이를 자처하며 예술인과 장애예술인들을 만나러 다니며 다른 사람의 인생에 깊이 개입하는 오지랖을 맘껏 발휘한다. 이미 사회복지현장에서 쌓아온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오지랖을 익숙하게 발휘해본다. 그러나 생각보다 연결의 지점을 찾는 것은 괴발개발하듯 행보가 어려웠다. 다양한 예술인들의 장르를 이해하고 느끼기에 아직 난 하수임에 틀림없고, 시간 투자총량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본능처럼 머릿속 설계도에 따라 어설프게 공작하는 과정을 계속 하고 있다.

 

장애예술인, 장애인예술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며

 

요즘 아주 재미있는 작업을 한다.

부산에서 장애인 예술, 장애예술인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장애예술인들, 장애인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는 토크 콘서트 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1회차와 2회차 이슈메이커로 초대된 발달장애인 아티스트와 농인 아티스트의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달장애인 아티스트인 니 얼굴 그려주는정은혜 작가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림 그리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정은혜 작가는 왜 싫어요? 나 행복해요라고 대답했다.

은혜 작가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삶의 고난과 존재의 미미함을 겪으며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인 만화가 장차 현실 씨는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6년 전부터 사람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니 얼굴은 벌써 2,7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은혜 작가에게 예술은 생존이자 존엄이고 치유였음을, 그리고 모두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었다고 두 사람은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술은 장애의 경계를 허문다.

정은혜 작가는 토크 콘서트를 마치고 몇 번이나 필자에게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이 시간이 나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은혜 작가와의 감정이 나와 교차함으로써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정말 본능에 충실한 정은혜 작가의 고백이었다.

 

두 번째 이슈메이커인 농인 아티스트 김지연 씨는 만나기 전부터 생경한 경험에 진행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내리고 있는 지연 아티스트의 환한 웃음을 시작으로 수어 통역사의 통역이 무색할 정도로 참 잘 어울리는 사이라는 것을 이내 알았다.

그는 80-90세가 되어도 춤을 추는 댄서이고 싶다고 했다.

수어 통역사 두 명을 배치하여 한 번도 해보지 않을 경험에 대한 초조함으로 시작된 토크 콘서트는 시간의 문을 훌쩍 넘은 듯 몰입하여 아티스트의 삶에 다가가 있었다.

김지연 아티스트의 예술에 대한 열정, 춤에 대한 간절함, 농인에 대한 편견의 안타까움, 농인 예술에 대한 본인 역할의 진정성 있는 결의가 참여한 사람들의 에너지와 맞닿아 있음을 알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흥분돼 있었다.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농인에 대해 몰랐음에 대한 고백과 앞으로의 협력에 대한 암묵적 결의가 촉촉이 내려앉았다.

 

모두에게 더함도 덜함도 없는 같은 선상의 예술이기를

 

예술의 가치는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어느 곳에든지, 예술 본능이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 신나는 연결과 컬래버레이션이 있었으면 한다.

그냥 내게도 일상의 예술인 것은 그도 당신도 누구에게도 더함도 덜함도 없는 같은 선상의 예술이기를.........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202052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어 12월부터 시행된다. 장애예술인들의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와 지원계획 수립, 창작활동 지원, 작품 발표 기회 확대, 고용 지원, 문화시설 접근성 제고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장애인 예술 지원법에 대한 기대도 사실 있지만, 나의 바람은 장애예술인, 비장애 예술인 구분 없이 사람과 사람 간의 작은 연결이 일상에서 시냇물처럼 흘러 높은 파고의 멋진 바다로의 향연이 되었으면 한다.

부산문화재단, 문화정책, 우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