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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재생] 완월동은 어떻게 문화예술과 만나는가?

발행일2020-10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완월동은 어떻게 문화예술과 만나는가?

 

변정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상임대표)

 

완월동, 혹은 성매매 집결지라는 트라우마

 

부산 최초의 신작로라고 알려진 천마로를 따라 송도 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면 저 멀리 깜박거리는 바다와 영도의 불빛이 아름답다. 그 풍경의 반대편으로 붉은 불빛이 골목길마다 새어나오는 동네가 있다. ‘완월동’, 지금은 사라진 행정지명이지만 부산시민이라면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테고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불리는 동네다. 부산의 지난 100년간의 지도를 겹쳐보면 얼마나 많은 거리와 동네가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100년 동안 거리의 구획과 그 용도가 전혀 바뀌지 않은 동네가 바로 완월동이다. 이런 완월동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한반도 최초의 유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강제적으로 시행된 공창지역이라는 것도, 한국 전쟁 당시 위안소로 쓰였다는 사실도, 한때 동양 최대의 사창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다.

 

완월동이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역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성매매 집결지는 일종의 외상(trauma)이기 때문이다. 외상에 대한 반응들은 다양하다. 망각, 회피, 부정, 체념... 성매매 집결지도 예외는 아니다. 계속되는 비극과 착취와 폭력이 존재했지만 2000, 2002년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 화재 참사가 일어나고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우리는 그 현장의 실체나 진실을 망각하고 회피 또는 부정하거나 체념해왔다. 이는 성매매 집결지라는 존재 자체가 아픈 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복이 외상에 의해 무너지고 부서진 기억들을 재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듯, 성매매 집결지 역시 이같은 변화의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완월동, 누구의 언어로 어떤 변화를 말할 것인가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와 재정비 과정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완월동 지역도 변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20197월에는 부산완월동폐쇄및공익개발추진을위한 시민사회대책위가 발족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부산시의 2030 도시재생전략계획에 완월동을 포함한 서구 충무, 초장, 남부민동 일대가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서구청은 용역을 추진하여 국토부 공모에 나섰다. 올해 부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완월동 골목재생리빙랩시민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완월동의 변화에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은 반가우면서도 더 깊이 있는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필자가 속한 단체인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2002년부터 완월동 이웃에 자리 잡은 NGO 단체로, 여성들과 더불어 완월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해왔다. 성착취 현장의 피해여성들을 지원하며 무엇보다 완월동이라는 장소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꼈고 행정과 시민사회와 완월동을 주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해왔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함께 나눈 적이 있다. 마을을 변화시킨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마을의 주체가 누구인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월동의 변화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아무런 자원 없이 고립된 여성들? 착취를 통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포주들? 그곳을 드나드는 구매자들? 혹은 이렇게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착취와 폭력의 공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재생할 것인가?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 속에서 우리 모두는 공통의 책임감을 느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는 그곳을 설명할 언어 역시 제대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살림은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하며 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 과정 속에서 문화예술가들은 완월동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도 했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 짓는 역할을 했다.

 

문화예술, 완월동을 만나다 - ‘언니야 놀자에서 완생프로젝트까지

 

예술가들이 완월동을 만난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2005년에 기획, 추진되었다 무산된 <완월동 문화열기 프로젝트 언니야 놀자>일 것이다. 완월동이라는 마을에서 그곳에 살아가는 언니들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면 좋겠다는 살림활동가의 소박한 바람이 완월동 안에서의 문화축제 기획으로 바뀌었고, ‘재미난복수와 공동기획으로 100명 가까이 되는 예술가들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포주들의 눈치를 보는 주변 상인들의 방해와 폭력적 진압으로 행사가 아예 무산되고 말았다. 예술가들은 완월동을 둘러싼 행정과 치안의 무력감과 보이지 않는 견고한 벽을 느꼈고, 각자의 방식으로 완월동과성매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200510, 남포동의 피프 광장에서 열린 Q&A는 살림과 문화예술가들이 만나 만들어낸 다른 질문과 답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 ‘살림에서는 완월동을 다시 생각하는완생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완생프로젝트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네트워크를 통해 결집시키는 것, 부산 지역의 크고 작은 모임과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완월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예술인 네트워크를 통하여 완월동을 각자의 방식으로 증언하고 기록하는 것 등을 주요 기획으로 삼았다. 전업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네트워크들은 완월동이라는 장소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방식을 선택하기도 했다.

 

여기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품 일부를 잠깐 소개한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운영자로 활동했던 노래짓고부르는 이내씨는 이야기 수집가로서 매주 한 번씩 완월동을 산책하며 주간 <불현듯>을 발간하였고,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 왔으며 현재 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연대에서 활동하는 송진희 작가는 <완월동 편지>라는 기획을 통해 완월동이라는 장소에 대해 편지를 쓰고, 그 응답을 주고받았다. 소설가인 김비 작가는 성매매 집결지에서 오래도록 생활했던 여성들이 실제로 부산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살았으면서도 추억을 공유할만한 장소가 거의 없다는 데서 착안하여 부산의 장소들 속에서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포토 에세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기묘나 작가와 장은수 작가는 반려동물과 여성들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연대를 발견한 <기대고 또 기대고>라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일상드로잉작가 박조건형씨는 <친구랑 완월동을 산책하다>라는 주제로 성매매 집결지 드로잉 작업을 해나갔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2015년 완생 종합전시회 <완월동, 기록하다>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예술과 재생, ‘예측 불가능한 만남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가능성

 

이러한 활동은 부산 완월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국의 각 지역들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와 도시재생 등의 변화 과정 속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문화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풀어왔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리본(re-born) 프로젝트>와 같은 전주 선미촌 성매매 업소에서 지속적인 문화예술 전시를 기획하며 선미촌을 새롭게 해석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변화의 서사를 만들어나갔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대구 자갈마당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를 앞두고 <자갈마당 시각예술 아카이브> 전시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의 참여로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의 아카이빙 작업을 시도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기획 전시 <다시 보다>를 통해 문화예술의 방식으로 성매매 집결지를 사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였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성착취 피해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송진희 작가는 <완월동 편지>의 서두에 편지란 예측 불가능한 만남이라고 적었다. ‘예측 불가능한 만남은 새로운 만남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것들과 다시 새롭게 연결되는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문화예술은 완월동이라는 현장과 부산 시민이 예측불가능한 만남을 만들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 만남은 성매매 집결지를 어둠과 망각의 역사로부터 끌어내 정의, 희망, 여성인권과 같은 새로운 미래의 가치로 연결짓는 회복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부산문화재단, 문화정책, 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