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아카이브

HOME 정책아카이브 문화정책이슈페이퍼

해당메뉴 명

메뉴 열기닫기 버튼

문화정책이슈페이퍼

[예술+고용] 부산지역 문화예술 현장에서 체감하는 고용 현장: 근로계약서에 담기지 않는 욕망과 아쉬움

발행일2021-04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부산지역 문화예술 현장에서 체감하는 고용 현장

- 근로계약서에 담기지 않는 욕망과 아쉬움 -


우동준(생각과바다 매니저)

 

  ‘고용은 노동을 제공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교환적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관계 형성을 위해 구직자는 그동안 경험해 온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기업은 원하는 직군과 구직 희망자와의 연관성을 판단한다.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하자면 그간 진행해 온 사업 내용과 미션으로 서로의 욕구를 판단하는 고용이란 자칫 단순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나는 몇 차례의 면접을 진행하며 최종 선정된 사람과 고용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고용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계약서에 적힌 노동보수라는 단어 안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욕망아쉬움이 함께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생각하는 바다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그 어떤 시기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일을 진행했다. 신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것이 백신의 원리라고 했던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긴장감은 오히려 조직을 성장시키는 모멘텀이 되었고, 우리는 고심 끝에 늘어난 사업 규모에 맞춰 새로운 인원의 고용을 준비하기로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내부의 기준을 다잡는 일이었다. 내부 구성원의 노동을 보호하고, 정당한 보상을 위한 지급체계는 어떠해야 할지 우리의 노동환경을 우선 판단해보았고, 서로에게 어떤 성장을 원하고 그 꿈의 방향이 오늘의 조직에서 실현 가능한지 역시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았다. 타인을 평가하기 위한 채용과정은 면접자를 공정히 선정하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간접적으로 우리의 고용 형태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2주 남짓한 모집 공고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대면 면접에서 나는 고용희망자에게 노동시간과 임금, 당장 수행할 과업의 구체적인 계획을 안내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지, 프로젝트의 대상은 누구를 선호하고, 어떤 장르의 그룹과 협업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이런 질문이 딱딱한 책상을 사이에 두고 가득 긴장한 채 말하는 서로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추상적인 질문이 오가는 면접 자리에서 앞으로 수행하게 될 업무와 구체적인 사업영역을 안내한다면, 근무 환경에 대한 이미지를 좁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의 면접을 진행하며 마주한 질문은 그렇지 않았다. 면접장을 찾은 분들은 노동조건과 관련한 정보만을 묻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통해 무엇을 획득해야 하는지 물었고, 기업이 앞서 실행해왔던 프로젝트 지향에 대한 공감과 다음 계획을 문의했다. 그들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읽을 수 있던 니즈는 안정적인 지역 내 직장에서 누리는 일 경험의 기쁨과 의미 있는 성장, 그리고 함께 하는 구성원들과의 호흡과 따듯한 분위기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는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작 필요했던 정보는 숫자로 안내된 임금을 넘어 노동을 통해 어떤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조직의 성장 가능성이었다. 달리 말하면 어떤 노동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지가 고용의 제 1조건으로 제시되는 임금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던 셈이다.

 

  면접은 부산에서 어떤 일 경험을 남길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계획하는 성장 방향이 무엇인지 작은 피드백 회의처럼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함께 또렷해지는 경험이었다. 적절한 인원을 발굴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치 미세하게 영점을 조정하듯 본격적인 업무 시작에 앞서 각자가 정립한 노동의 의미와 철학을 조정해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누군가를 고용하기 위한 한 차례의 과정이 끝나고 나자, 나는 나와 주변의 고용을 되돌아보며 그렇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고용엔 충분한 의미와 성장이 담기고 있는 것인지 자문했다. 함께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했던 이들, 시민사회 영역에서 공공서비스를 개발하는 이들을 만나며 그들의 노동 환경은 어떠한지를 물었다. 누구는 현장에 대해 피로함을 호소했고, 누구는 더 많은 가능성을 품은 타지역으로의 이주 계획을 전달했다. 낯선 영역에 진입한 새로운 사람의 뒤로 나름의 논리와 경험을 갖춘 이들의 이탈을 동시에 마주한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영역으로 떠나려는 이들의 공통된 니즈는 소진되지 않고 회복하며 일할 수 있는 체계에 있었다. 고용은 새로운 자리를 창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고용을 안전히 유지할 수 있는 틀을 고민하는 것도 포함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안엔 곧 퇴사를 선택했던 사람도 포함되기에 고용을 창출하는 것만큼이나 고용을 유지하는 것에도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의 몰입과 헌신에 대한 측정을 회피해왔던 것은 아닌지, 창작과 예술이라는 측정되지 않는 비전을 이유로 누군가의 노동과 정당한 보상마저 책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이들이 참을성과 진득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다 쏟아내었기 때문에 떠나려는 것은 아닌지 겸허히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동안 앞으로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문화 현장에 걸맞은 아카데미를 진행했지만, 떠나가는 이들을 붙잡기 위한 트랙은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았다. 혹자는 충분한 일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채 새로운 인력만 양성하는 아카데미 교육은 교육생이 자신의 힘으로 지역에 정착하기만을 바라는 판타지와 같다며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나 역시 지역 고용 현장의 문제는 풍부한 교육 기회의 부족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우선하고 완전한 헌신을 기대하지 않는 적절한 일자리부족에 있다고 느꼈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일자리란 체계적 업무 경험을 제공하고, 개인의 다음 스텝을 위한 적절한 도전과 쉼의 기회가 함께 제공되는 일자리를 의미한다.

 

  근로계약서에 담기지 않는 욕망과 아쉬움이란 상반된 욕구를 마주하며 우리는 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용은 언제나 새로운 기준을 수립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나는 고용이 새로운 사람과 연결되는 좋은 계기가 되고 또 다른 이와의 다음 만남을 희망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건 무엇이 가장 본질적 의미의 해결방법에 가까운지 주의 깊게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부산문화재단, 예술인고용, 문화예술, 예술인근로계약, 정책연구센터, 문화정책, 이슈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