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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우리 시대 문화예술에 대한 예우

발행일2021-06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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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문화예술에 대한 예우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신양희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선조들이 유물과 유적을 대하는 방법과 다른 의미의 문화유산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안착은 우리 문화와 삶의 양식을 파괴하며 이루어졌다.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향했을 뿐 아니라 관아(官衙)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 체계를 붕괴시키고 삶의 장소와 질서를 자의적으로 교란시켰다. 이에 결탁한 조선의 귀족들도 자신의 백성과 문화를 버렸다. 이 시기를 거치며 많은 유물과 유적이 훼손되고 약탈당했으며 그것을 복원하고 제자리로 돌리는 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에도 시간은 필요했다. 가령 박정희 시대가 호명한 민족과 역사는 군부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국민 계도의 강제적인 수단이었다. 박정희의 전통과 유물, 유적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은 자신에 대한 맹신일 뿐이었고 그에 따라 많은 과오를 남겼다. 결국 문화유산을 인식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이해하는 일은 외부인들에 의해서도, 한 지도자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장을 열어준 분이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993)의 등장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의식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화예술만이 최고라고 여기던 풍토를 반성하게 했다. 그는 우리 문화유산이 왜 아름다운가를 인문(人文) 환경에 따라 밝히고, 그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와 그것을 만들고 지켜낸 사람들의 애정에도 큰 관심을 두었다. 그의 책은 문화유산에 대한 민도(民度)를 반영하면서도 민도가 성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당대적 향유를 넘어 그것들이 더 안전하고 아름답게 후세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성장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이제는 유물들을 졸속으로 처리하지 않으며 유물이 온전하게 자신의 과거를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준다. 유물과 유적의 관리나 복구에서도 자기 시대가 할 수 없는 일은 후대가 하는 것이 맞다고 하는 생각의 품도 넓어졌다. 결국 유물과 유적을 보전(保全)하여 선조들과 생활과 정신을 마주하는 일은 역사를 단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어진 것으로, 보편적 역사로서 후대와 공유하려는 노력이다.

 

현대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은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노력과는 사뭇 다르다. 더는 과거와 같은 공력을 들이지 않기에 훌륭한 정신과 만듦새를 발견하기 어렵다. 불자들의 시주가 사찰의 가람배치를 흩트리고, 신도들의 헌금이 교회 건물을 거대하게 키우기만 할 뿐 종교적 진리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어렵다. 속세는 더하다. 자본의 횡포 아래 부동산 개발이나 관광, 유흥을 만족시키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문화예술이 자리 잡아갈 뿐이다. 발전된 기술을 가졌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정성스러움을 쏟을 대상을 알지 못하기에 후대에 자랑스럽게 물려줄 명품(名品)이 없다. 우리 시대가 만드는 문화예술에는 올바른 사상(思想)과 정신의 충만함 대신 돈이 아로새겨져 있다.

 

최근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둘러싼 관심은 이를 보여주는 예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규모와 그 작품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미술품 관련 수사에서 특검은 미술품과 관련한 삼성 측과 갤러리 관련자의 진술이 자주 번복되고 상호 모순되어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도 전부 수용하였으며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미술품 구입 자금을 이 회장 개인 재산으로 규정하였음*을 통해 미술품 거래의 부정적 단면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한 개인이 그렇게 많은 유물과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을까. 자본가의 개인 재산은 노동자들에게 지불하지 않은 노동을 갈취한 것일 뿐이다. 더군다나 수집가로서 노력이나 희생을 찬탄할 필요도 그의 심미안이나 예술에 대한 안목을 치켜세울 필요도 없다. 그가 기증한 유물과 작품을 제대로 대우하면 되고 기증자로만 그의 이름이 남으면 될 일이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관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있고 이후 여러 지역이 앞다투어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것에도 문제가 있다. 삼성가는 유물과 작품의 성격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근대 미술가는 작가의 연고에 따라 지역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다. 그 유물과 작품은 맥락에 맞게 분류되고 연구되어 일반에 공개하면 되고, 소장에 문제가 있다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여건에 따라 수장고를 더 확보하면 된다. 한국과 서구의 근현대 작품들로 이건희 미술관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에 과연 그 작품들에 대한 이해나 사랑이 먼저 있었을까. 오히려 작품가격에 환호한 것이거나 이건희(삼성)로 표현된 브랜드를 앞세운 관광 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국가문화예술기관이 수도에 집중된 현상을 비판하는 것이 옳고 이런 기관들이 지역에 더 많이 잘 안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에 대한 근거로 이건희 미술관을 앞세울 이유는 없다.

 

국가와 지역이 다르지 않다는 것 역시 우리가 과거 유물과 유적을 대할 때에도 뚜렷하게 인식된다. 우리는 지금도 불국토(佛國土)’를 만들어낸 신라인들의 정신을 만나기 위해서 경주에 가고, ‘백제의 미소의 현신(現身)인 마애삼존불을 보기 위해 서산으로 간다. 몇십 년에 걸친 익산 미륵사지 발굴조사는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보수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익산박물관을 낳았다. 유물의 근거가 되는 특정한 장소는 그 지역을 품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이야기도 함께 품고 있다.

 

넓은 대지에 주춧돌만 남은 황룡사터는 지금은 폐사지로 남아 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찰 경내만 총 3만 평 되는 황룡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것은 진평왕 14(553)으로 17년 만에 담장을 쌓아 완성했는데, 장륙존상을 만든 것은 22년 후인 574, 금당은 32년 후인 584, 9층 목탑을 준공한 것은 92년 후인 645년이다. 그러니까 완공까지 걸린 기간이 장장 1세기를 육박하는 것이었다. 698년 벼락을 맞아 720년에 수리를 하고 754년에 에밀레종보다 세 배나 더 큰 종을 만들었을 때가 가람배치의 마지막 완공이라 본다면 그것은 200년이 걸린 셈이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은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문화와 예술에도 이러한 접근법이 여전히 유효하다. 훌륭한 문화와 예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만아니라 제대로 전승하기 위한 안목이 중요하다.

 

* 김영희, 삼성 특검을 돌아보다, 경제개혁리포트, 2008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 140, 1993

 

부산문화재단, 문화정책, 문화예술, 큐레이터, 문화정책이슈페이퍼, 신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