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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출판]시민과 지역 중심 출판문화 활성화를 위한 고민들

발행일2022-02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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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지역 중심 출판문화 활성화를 위한 고민들

 

장현정(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회장, 호밀밭 대표)

 

 

  지난 127,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가 출범했다. 3월 기준으로 지금까지 34개 출판사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부산은 이미 2019년에 김혜린 시의원의 발의로 지역출판조례를 마련한 바 있지만, 직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진데다 부산에서는 그동안 출판 관련 시정(市政)의 경험이 거의 없었던 터라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2년이라는 시간이 별 성과 없이 지나갔다. 그러다 올해 초 협회가 출범하면서 다시금 부산시와 의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새롭게 지역출판의 가치를 되새기며 출판이 지역 문화의 새로운 활력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전략을 마련 중이다.

 

  왜 지역이고, 왜 출판일까. 근대 이후 세계 지식 담론의 서구 편향성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이는 단일국가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동안 한국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출판과 문화예술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형적일 정도로 심했다. 이는 곧바로 정신과 문화의 식민성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부산은 입버릇처럼 늘 서울을 의식하고 서울과 비교하며 오래된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온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출판은 진흥의 대상이기보다 억압과 금지의 대상이었다. 통제된 지식과 담론만 서울을 중심으로 유통되었고 지역마다 고유한 출판과 독서문화가 자리 잡기는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민주화 이후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한국 출판, 나아가 지역출판이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2021년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일반 단행본 출판사 수는 2,013개로 파악된다. 이 중 1,277개가 서울에 있고 수도권까지 합하면 1,696개이다. 전체 출판사 중 80%를 훌쩍 넘는 출판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부산에는 41, 대구에는 35, 광주에는 37, 대전에는 33개의 출판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전자책 출판 제작업의 통계를 봐도 128개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인데 부산에는 2개 회사만 등록되어있다.

  출판 관련 지원사업도 오랫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출판 관련 법령과 제도도 2002년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처음으로 마련되었는데 지역출판에 관한 법적, 제도적 고민은 이후로도 한참이 지난 2015년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각 지방정부에서도 출판을 어떻게 육성하고 지역의 독서문화와 어떻게 연계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출판, 도서관, 서점 등 여러 정책이 따로 놀며 공회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2002년에 한국의 출판에 대한 정책이 막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면 20년이 지난 2022년에는 이제 지역의 출판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정식으로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사회의 변화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단순히 종이책으로서, 올드 미디어로서의 출판이 아니라 지식과 문화의 원천콘텐츠로서의 출판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많은 분야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뜨겁고 SNS와 유튜브 등 콘텐츠와 미디어 환경도 격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출판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많지만,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는 말처럼 책은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또 다른 가능성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출판에는 숫자로 환치되지 않는, 디지털의 방식과 영역으로 포섭할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역능(puissance)이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웹툰, 영상, 어플리케이션, 나아가 공연이나 축제까지 영역을 넘나들 수 있다. 출판이 위기라고 하지만 이미 전국 각 지역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기꺼이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독립출판과 독립서점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모이고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은 또한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 및 연결성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시키면서 오늘날 지역(local)’의 가치를 새롭게 증폭시킨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지역의 지식과 문화, 서사와 담론을 물리적 차원의 지역에만 가두지 않는다. 지역출판의 성과를 세계로 내보낼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전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과 출판이 만나는 방식도 이전과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출판이 가진 문화로서의, 또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시대변화와 조응하는 구체적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부산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영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창조콘텐츠 육성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설정한 바 있다. 이런 시기에 그 원천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안정적인 콘텐츠 산업으로서의 지역 출판산업의 가능성과 전략에 대한 관심과 육성은 긴요하다. 산업의 여러 분야가 AI나 새로운 디지털 기술로 전환되면서 앞으로 도시의 미래가 무형의 서비스, 특히 콘텐츠 산업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지역의 출판사들이 연대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며 출판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뜻을 모은 것은 그래서 늦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자평한다.

 

  도시의 성장에는 문화와 산업이라는 두 축이 모두 필요한데, 출판이야말로 문화와 산업의 특징을 함께 갖는 분야다. 출판은 오랫동안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들만의 영역이었지만 문맹률이 낮아지고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더 많은 사람이 출판의 주체로 거듭나며 독자와 저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신춘문예 등단, 유명인사, 교수, 전문가 등이 중심을 이루던 저자 군()이 저마다 SNS를 비롯한 다양한 경로로 자신의 콘텐츠를 유통하며 다중(Multitude)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보다 더 편하게 넘나들 수 있는 출판의 대중화와 저자 발굴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더구나 지역의 신인 저자들과 독자들의 유출도 심한 상황이다. 글쓰기, 독서 등 출판과 연계된 다양한 문화 활동에 대한 높은 수요는 이미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어서 이런 시민들의 문화적 수요를 만족시키는 한편 이를 통해 지역의 출판산업 생태계가 구축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원천적인 인적, 물적 인프라 구축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출판은 이미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과 긴밀히 연결되어왔지만 나아가 디자인, 영상, 아카이빙, 교육 및 강연, 도서전과 같은 축제, 인문 투어, 도시재생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사회 의제와 연동되고 있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는 창립과 동시에 202229일부터 16일까지 전체 회원사 33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모두 29개 회원사가 참여해주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인 출판사의 설립 붐이었다. 협회는 또한 214일과 22,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지역의 출판, 서점, 도서관, 언론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기회도 가졌다. 무엇보다 출판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속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지금은 출판, 도서관, 서점 등 독서문화 정책이 따로 놀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도서관 장서 구입비 확대, 공공도서관 증설과 작은 도서관들의 확대 개편 등의 방안이 논의되었고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또 지방정부 차원의 예산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특히 공공도서관의 경우 경기도의 사례를 참고해 지역 서점을 통해 책을 발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서점이라는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아무 지역, 아무 업종이나 입찰을 하는 제도적 맹점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 도서관의 사서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 출판물에 관심을 보여주기를 희망했다.

  최근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서점 중 하나였던 아스트로북스가 5년 만에 폐업한 것과 관련해 지역의 서점들에 대한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서점은 독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며 출판과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한 미세혈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적 공간이라는 이유로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여러 의견을 바탕으로 협회는 올해부터 여러 사업을 준비 중이다. 특히 그동안 부산의 출판이 문화적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해왔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취약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지역의 콘텐츠와 가치를 확산하고 자체적으로 규모 있는 기획을 추진하려면 이제부터는 비즈니스로서의 출판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현재 협회는 교육, 지역 콘텐츠 출판지원, 회원사 간 정보 공유 및 대외 홍보, 공동 시리즈물 기획, 지역 유관 콘텐츠 산업 연계, 지역 출판인 권익 보호,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Busan Publishing Culture and Industry Association)의 이니셜을 딴 ‘BPCIA 어워드’, 공기업 및 공공기관 연계 독서문화 확산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며 장기적으로는 부산출판산업연구지원센터이나 부산북비즈니스센터 설립과 지역의 향토 기업이 함께하는 지역출판기금 혹은 모태펀드 등도 고려하고 있다. 또 지역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출판사들과의 교류와 지역출판사들에 가장 시급한 공간인 창고 확보를 통해 재고관리나 유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등 출판문화산업 기반시설 확충도 마련하고자 한다.

  나는 출판 관련 특강을 하거나 기회가 될 때마다 출판은 문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분야든 시작할 때 책(기록)을 통해 자료를 모으고, 하나의 프로젝트 혹은 삶이 끝나도 역시 책(기록)으로 남기게 마련인데 그렇게 책(기록)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제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지식기업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만의 구체적 맥락(context)을 톺아보고 이를 독자들의 시대적 감수성에 조응하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기존 출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전환해 지역의 청년들과 수시로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처럼 인구 300만이 넘는 도시는 유럽의 작은 국가 하나라고 봐도 좋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부산이 계속해서 서울을 의식하거나 단일국가 내부의 시야로만 미래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 현재 부산은 335만 인구에 출판 예산은 4,000만 원 수준인데 공연 하나를 만드는 예산에도 미치지 못한다.

 

  협회와 부산의 출판사들에게도 숙제가 많다. 지원만 바란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만한 디자인과 결과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시도가 계속되고 여러 자리에서 같은 얘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차근차근 실질적으로 체질을 바꾸며 나아가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부산이 동남권 출판산업의 구심점이자 노드(node)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사람, 또 많은 기관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 속 한 구절이 떠오른다.

  “모든 새로운 것은 변방에서 시작되는데, 거기에는 전제가 있다.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문장이다. 부산의 출판사들이 협회 출범을 계기로 부산문화의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맺는다.

출판, 출판문화, 부울경 메가시티, 수도권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