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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여성]예술에는 성별이 없다

발행일2020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예술+○○ : 예술+여성

예술에는 성별이 없다.

 

송진희(부산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공동대표)

 

여성들에게 참정권과 교육권, 노동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 예술의 영역에서도 예술교육은 물론이고 예술가 조합이나 아카데미, 아틀리에에 여성은 참여할 수 없었다. 그 시대를 다룬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미술아카데미에 자신의 그림을 출품해야만 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우리가 배워온 서양미술사 작품에서 여성을 누드상태의 수동적인 포즈로 그린 이유도 다수의 남성 화가들 시선에서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존재, 미적인 아름다움의 대상, 때로는 유혹하는 존재로서 대상화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부터 공적영역에서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페미니즘운동의 물결이 불거지면서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브아르 등의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서 수동적인 여성성을 해체하고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문제제기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폭력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될수록 예술은 그 목소리를 알리는 매개가 되어주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에서 2018년 미투운동을 겪으면서 한국사회도 만연한 페미사이드와 성폭력 문화의 심각성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면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예술은 그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로서 그동안 소외되어왔던 여성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세계를 읽어내는 여성서사의 흐름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쟁에 참전했지만 이름도 얼굴도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기존 남성중심의 전쟁서사가 지워왔던 장면을 살려낸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서는 6.25전쟁 이후의 베이비부머(baby boomer)세대로 집안의 가장이자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했지만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는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의 구술인터뷰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여성의 관점을 통해서 국가, 정치, 계급, 노동, 역사 등을 해석하며 보편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여성들의 자기역사쓰기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해내고 있다. 여성들의 자기역사쓰기는 생활예술, 지역커뮤니티의 영역에서 더욱 확장되어 대전지역 청년커뮤니티 , 지리산 생활예술공동체 <문화기획 달>, 전주 여성생활문화공간협동조합 <비비> 등 지역, 청년, 비혼, 공동체를 주제로 여성들의 돌봄 노동, 터부시되었던 몸의 언어, 대안적 비혼 공동체 등 다양한 서사를 시민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가부장제가 부여한 성별 역할 고정관념의 둘레를 뚫고 말하고, 쓰고, 다시 재해석하는 과정들을 통해서 여성서사는 탄생하고, 여성서사가 예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서 성평등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나약한 공주서사가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하는 주체로서 여성을 그려내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예술은 그 매개로서 중요한 역할을 띄고 있다. 왜곡된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살아있는 한 인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발굴하는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희망해본다.

 

더불어 예술을 통해서 성평등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려면 예술정책과 예술현장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빠른 시대적 흐름에 비해 정책과 현장은 아직 과도기적 상태에 머물러있다. 2019년 한국성평등소위원회에서 추진한 한국영화산업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개봉한 1,433편의 영화 스태프 성비 비율은 의상과 분장을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영역에서 남성성비가 월등히 높았다. 또한 2019년 아르코 예술지원사업의 성비통계결과 규모가 큰 사업과, 단체대표에 있어 여성예술가들의 참여가 현저히 줄었다. 이러한 성비격차는 통계에 그치지 않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상임 위원 최종 후보자 전원이 50세 이상의 남성으로 정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여 최종후보자를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여 다시 선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020년의 현실은 아직도 성별에 따라 동등한 기회와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던 17세기 예술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예술현장의 성평등 팩트 체크는 지속적인 연구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문체부가 성평등 정책을 중요한 비전으로 전면에 부각시켰던 것에 반해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비전 2030에서 성평등 정책이 소외되어 있는 지점이 현재의 상황이지만, 지역문화재단에서도 예술인복지실태조사와 예술지원사업에 따른 성비분석을 통해서 지역에 맞는 문화예술계 성평등 정책 연구가 선행되길 기대한다. 이제 문화예술계는 성 주류화가 정책의 핵심 과제이다. 예술계에 평등한 기회가 제공될 때, 예술의 사회적 역할도 확대되며 더 많은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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