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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산시민 문화헌장>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야

발행일2020-10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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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 문화헌장>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야

 

남송우(<부산시민 문화헌장> 제정 추진위원장

 

국내에서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부산시가 <부산시민 문화헌장>을 마련했다. 이 문화헌장은 전문과 13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핵심 내용은 시민이 문화권리 향유의 주체이며, 이 문화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 나가기 위해서 부산시와 시민이 함께 구현해나가야 할 사항들을 담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국민주권은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으로서 강조되어왔다. 특히 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만 국민주권이 이해되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문화 주권에 대한 인식은 취약한 편이었다. 인간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주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문화적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온전한 행복을 향유하기는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문화적 주권의 온전한 향유는 정치적경제적인 주권의 행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권리가 다년간 국제적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문화적 권리의 범주는 법률적 내용이나 구체적 실행에서 가장 덜 논의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 권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낮고 논의가 부족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문화적 권리의 문제는 다른 권리, 특히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에 비해 주장하기가 쉽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서냉전 구도 속에서 문화적 권리는 경제발전이라는 현실적 과제와 사회적 권리 신장에 묻혀버렸다. 또한 문화의 특성상 문화적 권리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사회적 쟁점이 되려면 대중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개념적 명료성을 지녀야 하는데 문화적 권리는 그런 명료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유네스코 제3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 다양성 선언>이 발표되고 난 이후부터 문화적 권리에 대한 인식은 다른 차원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선언 5조에는 문화적 권리는 인권의 필수적 구성 요소로서 보편적이고 불가분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성격을 띤다. 창조적 다양성이 활성화되려면 세계 인권 선언27조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 제13조와 제15조에 명문화된 문화적 권리가 완전하게 이행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런 연유로 국내에서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 실현에만 집중되었던 논의가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과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 중의 하나가 각 지자체가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시민 문화주권을 실현시킬 <부산시민 문화헌장>이 단순한 공표로 그치지 않고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공표 이후의 과제가 더 중차대하다.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공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더 소중하게 여기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공표 이후의 문제이다. 즉 공표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표 이후에 부산시와 시의회 그리고 문화기관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부산시민 문화헌장>이 지향하는 바를 단계적으로 실현시켜나가는 추동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바로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정신과 가치를 제대로 현실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방안은 부산시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부산시민 모두가 정말 문화주권을 제대로 향유하는 행복한 문화도시를 만들어 나가려면, 부산시와 시민이 함께 문화도시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어 힘을 합쳐야 한다. 우선은 부산의 문화예술 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대를 형성해야 하지만, 이 연대는 부산시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교육기관들과의 협력 체계 구축은 필수적이다. 문화는 한 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연속되면서 새로운 전통으로 거듭나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정신 구현을 위해서는 부산시와 문화예술 단체 나아가 학교기관들만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주체는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가치와 정신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모든 다양한 시민 주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구성력과 조직력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실천 주체의 탄생만이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가치와 정신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의 결성만으로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가치와 정신이 온전히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연대는 가치와 정신의 실현을 위한 구심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구심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다음 단계의 과제가 된다.

그 과제 증의 하나가 우선적으로 시민들이 <부산시민 문화헌장>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인식하게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떤 문화적 권리목록이 문화헌장에 실려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문화권리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체험이 없는 문화적 인식은 공허할 뿐이다. 이는 시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부산시민 문화헌장>이 마음에 다가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인권이 천부적이긴 하나 인간이 적극적으로 그 인권을 인식하고 지켜내지 않으면 인권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다. 문화적 권리도 마찬가지다. 부산시민의 문화권을 제안하고 있는 <부산시민 문화헌장>을 시민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이 자신과는 무관한 하나의 문건으로 존재한다면, 문화헌장은 아무런 현실성이 없다. 그러므로 앞서 논의된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가치와 정신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가 지속적으로 시민들에게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가치와 정신을 체화시켜나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연대의 결성이 필요한 실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 연대가 추진해야 할 일들은 일차적으로는 시민들에게 <부산시민 문화헌장>의 가치와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산시와 시민 사이에 필요한 문화적 소통을 원활하게 매개함으로써, <부산시민 문화헌장>이 지향하는바를 단계적으로 이루어나갈 수 있는 촉매자 역할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부산시가 책무로 제시한 조항들을 합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잘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도 중요한 책무가 된다. 부산을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더 많은 현실적인 과제들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산시민 문화헌장>이 단순히 공표로 끝나는 한 장의 문건으로 전락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산문화의 진정한 방향타 구실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부산문화재단, 문화정책, 남송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