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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산’스러운 문화예술 국제교류

발행일2023-12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부산’스러운
문화예술 국제교류

이 지 훈
필로아트랩 대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부산시민들의 노력은 아쉽게도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시민들이 기울인 노력은 분명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량을 한 단계 높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국제교류 주체’로서 도시 역량을 들 수 있다. 오래전부터 부산시는 다른 국내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차원에서 국제교류를 시도했다. 말하자면 도시 단위에서 해외 도시 간 연결이나 네트워크 구축을 시도한 것이다.

 

국제교류 주체로서 도시의 역량이 커졌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이 마련한 ‘인터시티’ 전시회가 선구적이었다. ‘인터시티’ 전은 33명의 동아시아 작가들이 참여해, 현대도시에 대해 사진과 영상, 회화와 설치로 대화하는 전시 기획이었다. 그 뒤로 문화예술 분야 인터시티 교류는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졌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한 ‘부산 인터시티 영화제’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도시 단위 국제교류에는 한계가 있었다. 먼저 내용 면을 살펴보면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문화예술행사 가운데는 그 행사가 과연 국내 다른 도시가 아닌 부산에서만 열릴 수 있는 행사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 도시의 고유한 색채라고 할까, 도시 단위의 고유한 인프라와 콘텐츠에 기반한 교류가 다소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또 국제교류의 범위를 돌아보면 부산시가 독자적으로 교류하는 도시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부산시가 적극적인 외교 주체로 나서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번 ‘2030 부산세계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부산시는 그야말로 세계를 상대로 부산을 알렸다. 부산문화재단 또한 교류 영역을 넓혔다. 유네스코, 유럽연합(EU)과 국제교류의 물꼬를 트고 마르세유, 에든버러를 비롯한 도시(문화기관)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전례 없이 적극적인 ‘광폭 행보’였다. 이 과정에 부산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 시민들 또한 부산이 국가 단위가 아닌 도시 단위에서 해외 도시와 연결?협력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같다.
 이 점에 관해서는 관광객의 증가로 이야기해도 좋을 듯하다. 올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 증가율이 전국 평균(373%)보다 훨씬 높다(416.2%). 또 온라인 여행사(OTA) 플랫폼 기업인 ‘트립닷컴’이 선정한 ‘2023 인기 급부상 여행지’로 부산이 오스트리아 빈과 함께 세계 양대 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관광객 상당수가 도시의 고유한 개성을 즐기려 찾아온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해외 관광객 증가는 한 도시로서 정체감, 곧 ‘국제교류 주체’로서 도시 역량의 성장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교류의 목적은 활력과 다양성을 얻는 것

 문화예술 국제교류의 관점에서 이런 현상은 분명 긍정적이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잠재력을 이어 가며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올해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은 새 기획을 잇달아 내놓았다.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 학생공연예술마켓 ‘어릴적 예(藝)’, K-아트페스티벌 계획이 그 사례다.
 국제교류 면에서 눈여겨볼 점은 국제마케팅 기반이 되는 플랫폼 구축이다. 이종호 BPAM 예술감독의 말처럼 부산을 ‘국제시장’으로 만들고, 문화 분야의 국제적인 플랫폼으로 만들자는 것. 그런 한편 공연예술 마켓을 축제 형태로 마련해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전략이다. 좋은 시도로 보인다. 시각예술 분야 국제마켓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이제 공연예술 분야 국제마켓이 마련됐다. 그동안 부산이 확보한 해외 네트워크, 또 한층 높아진 도시브랜드의 가치를 살리면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 기대한다.
 다만 문화정책 관점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국제교류에서 국제마켓이 전부는 아니다. 예술가 상당수와 시민들에게는 꼭 예술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해도 각자에게 색다른 재미와 영감을 주는 교류의 장이 중요하다.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국제교류에서 무엇을 바라나. 또 무엇을 얻을 수 있나. 무엇보다도 낯선 사람들을 만나 새 아이디어(또는 이질적이면서도 공감이 되는 감각)를 얻고, 각자 나름대로 실험(재현, 발전, 변형)하며, 스스로 변모하는 활력을 얻기를 기대하지 않겠나.
 이 관점에서는 문화 분야 국제교류가 순수한 ‘예술’교류로 한정될 필요도 없다. ‘비공식 문화 영역’들이 창출하는 도시의 멋진 분위기는 지역 시민이나 관광객의 도시 경험에 큰 영향을 주고,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오직 (공립 문화시설에서 펼쳐지는) 공식 문화 영역만이 도시를 활력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문화적 배경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비공식 문화 영역에서 만나 빚어내는 창의적 에너지와 혁신적 시도는 도시에 문화적 경쟁력을 더하는 주요 자원이다.
 가령 부산 커피 축제가 탁월한 국제교류의 장이 될 잠재력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다. 현재 ‘커피도시 부산포럼’이 구상하듯 커피산업과 문화예술이 결합한 형태의 커피 축제는 다른 성질의 문화 주체 또는 산업군 간에 협력체계를 만들고, 도시 활력(=자생력)을 높여줄 수 있다. 또 주류문화뿐 아니라 비주류 문화를 포함하고, 여러 계층의 관객과 시장을 아우르는 특성, 말하자면 ‘다양성’을 거머쥘 수 있다. 국내외 음악인, 미술인, 커피산업 관련자를 연결하는 ‘뉴욕커피페스티벌’이 그 사례다.

 

‘문화 활력과 도시 성공’을 이끄는 교류

 비단 커피 축제만이 아닐 것이다. 얼마든지 또 다른 잠재성의 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부산문화 기획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문화 활력과 도시 성공은 공진한다. 문화가 살아야 도시가 살고, 도시가 살아야 문화가 산다. 바로 이 점에서 「문화예술과 산업(=사회경제)을 연결해 도시 활력과 다양성을 높이는 국제교류」에 주목한다. 이 같은 국제교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또 ‘문화 예산 축소와 도시 경제침체’의 이중고를 극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문화예술 교류는 도시 내외의 다양한 문화 주체와 형식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관계
성을 연결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도시는 다방향으로 진화하지만, 다음과 같은 의제를 공유한다. 공식/비공식 문화 영역 간의 조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협력,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어울림, 지역성과 국제성의 균형, 전통과 현대성의 상생… 더는 이분법적(양자택일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제들이다.
 현재 부산에는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 기반이 세워지고 있다. 이 가운데 부산오페라하우스, 부산콘
서트홀이 가는 길이 다르고, 국제예술마켓이 가는 길이 다르다. 이에 덧붙여 세 번째 길이 있다. ‘문화/비문화(=산업)’, ‘공식 문화/비공식 문화’, ‘공적영역/사적영역’이 ‘부산’스럽게 섞이는 국제교류. 이분법적 대립이 아닌 파트너십을 지원하는 문화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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