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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식

시각예술인 회화 서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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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김종식

  • 이름김종식
  • 생년월일 1918년 12월 13일
  • 출생지동래 장전동

인물소개

  • "부산문화예술 전자아카이브" 2012년 8월의 인물스페셜


    김종식, 부산미술에서의 위상


    강 선 학(미술평론가)

    필자에게 김종식 선생은 대청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대구집이라는 작은 술집과 겹쳐진다. 지인들에 둘러싸여 조는 듯 앉았다 작은 크로키 북에 그적거리며 드로잉을 하는 도연하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지금 김종식의 세계라 부를만한 작품 세계를 언급하고 싶지만 그만한 연구가 드물다. 우리 지방에서 그를 제외하고는 현대미술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막상 그에 대한 심도 있는 작품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로 미루어 보면 그 동안의 평가도 인상적인 스케치에 가깝다. 1987년 발간 드로잉집의 옥영식의 글, 1988년 부산일보 발간 金鍾植畵集의 김해성의 글이나 조순옥의 부산대학교 석사학위 논문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만한 연구를 찾기 힘들다. 회고전이나 유고전, 부산미술의 재조명전류의 전시는 없지 않았지만 그런 전시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접근한 작품분석이나 비평론을 만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김종식 뿐 아니라 우리 지역작가들에 대한 연구는 시급하고 절실한 일이다.


    김종식은 1918년 12월 13일 동래 장전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8월 21일 9월의 부산일보 초대전을 앞두고 타계해 그 전시는 유작전인 된 셈이다. 동래공립보통학교(현 동래고)를 1932년 입학 1937년 졸업했다. “1937 도쿄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1938년 도쿄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로 옮겨 1942년 졸업했다.” “1942년 귀국”, 일제강점기의 해방과 함께 부산 동래 중학, 김해. 충무 등 경남 부산 일원의 중등학교 교사를 하다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교편을 그만둔다. 1968년-1984년 동아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한다.
    “1946년 현 동래고등학교 강당에서 <해방감격> 외 39점으로 개인전”을 갖는 등 부산미술 여명기의 작가이자 1세대 작가로 분류된다. 서성찬, 김영교, 김윤민, 임호, 김경 등과 함께 『토벽 동인전』을 만들어 활동했다. 1950년 전후 동광동 자택에 아틀리에를 차려 작고 전까지 작업을 했으며, 1989년부터 「남장 김종식 기념관」으로 명명 운영되었으나 이 글을 쓰는 시점(2012.8.15)에는 담장이가 집 안팎을 뒤덮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김종식의 작품 세계는 크게 1946년 귀환동포로 대표되는 사회상이 잘 드러나는 작품과 1950년대의 <부산항> 연작, <닭을 안은 여인>, <빨래> 등에서 나타나는 조형적인 배려가 두드러진 구성적 작품들, 1960년 이후의 <성주사>, <불국사>, <내원사>, <미남의 풍경>, <서생>, <장안사>들에서 보이는 색상과 필촉의 흔적이 강하게 드러나는 풍경화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보이는 드로잉에서의 강한 추상화 작업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구상과 추상을 오간 작가로 작품에서 추상성은 강하지만 구상적인 기호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추상작가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도리어 구상화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러나 대상이라고는 자신의 움직임밖에 없는 드로잉 작업의 경우 유화작업에서 볼 수 없는 추상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작업을 완성된 작품 세계로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이 양면성은 그의 작품을 읽거나 연구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다. 추상과 구상이라는 이분법적 이해가 아니라 사물을 싸고 있는 미규정의 사물성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태도이자 사물을 보아내는 세계관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김종식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이기보다 그의 구상성이 갖는 사회적 측면과 표현이 1980년대 부산형상미술이라는 후세대와의 연관성과 영향관계에 대한 것이다. 김종식의 <풍경.1946><귀환동포.1947><노상.1952><부산항.1959>들의 작품은 한 작가의 사회적 시선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확인하게 해줄 뿐 아니라 부산미술의 초장기 경험으로서 현실문제에 대한 사회의식이 1980년대 사회, 정치적 상황에 의해 본격적으로 노출되는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김종식을 부산현대미술이라는 큰 지도에서 보자는 뜻이다.
    김종식의 양광이 넘치는 남방적 풍경이라는 순수성이나 서정적인 독특한 후기 미학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작품에서 보이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가감 없는 표현에 주목하고 그것의 영향을 어느 선까지 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 그의 이해에 주요 부분이라 판단한다. 왜냐하면 1980년대 부산미술도 이런 추세에 무관할 수 없었으며 김경, 김원 등의 작업과 한상돈, 양달석, 추연근, 박춘재 등과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일정부분 연계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군사독재에 의한 사회적 분위기는 현대화의 다급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상황을 드러내는 작업에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었고, 이런 한계가 하나의 저항적 세력으로 나타나는 곳에 1980년대 부산 형상미술이라는 성과가 있다.
    형상미술은 1980년대 부산미술의 대명사이다. 서울의 미술운동이나 추세와 다르게 자의든 타의든 부산미술의 특수성이나 정체성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의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나타난 신형상 미술이나 국내 정치상황에 대항했던 민중미술이나 민족미술의 한 부류로 생각하지만 그런 연관성보다 부산미술의 잠재적 특성이 부각된 것으로 판단된다. 시대적 흐름이 이를 고무시키고 현실화한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정치적 상황판단이나 미술운동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은 부산미술에 시대 흐름을 그대로 옮겨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1970년대 후반 1980년대는 부산에서 추상열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던 시기였다.


    1947년작 김종식의 <풍경,91x73cm>은 1979년 『부산미술30년전』도록에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1994년 이용길이 운영위원으로 역할을 한 국제문화센터 개관 기념, 『釜山美術50年展』국제신문 발간 도록에는 <전쟁>으로, 2010년 발간 『부산미협64년』에도 <전쟁>으로 되어있는데, 1979년 작가 생존 당시의 전시에는 <풍경>으로 제명이 붙어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시점이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작품 제명이 사후 바뀌었다. 대동아전쟁이라 부른 세계2차 대전 때의 일본의 정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인으로서 바라보았던 전쟁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운 시점이기도 하다. 붉은 색조와 푸른 색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하단의 인물들은 붉게, 상단의 배와 하늘은 푸른 색조로 대비를 이룬다. 전쟁에 참여하려고 머리띠를 두르고 한쪽 어깨를 내놓은 심하게 과장된 얼굴의 인물이 전면에 나서 있고, 그 왼쪽으로 눈이 강조된 글쟁이의 모습 혹은 전쟁을 독려하는 또 다른 임무에 혈안이 되어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독특한 상황으로 제시된다. 그 뒤로 붉은 파도가 일렁이고 육중한 배가 이를 막아서면서 푸른 색조의 항구 풍경이 이어진다. 전쟁이라는 제명이 없다하더라도 정황의 급박함과 불안한 정조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외 <귀환동포>라는 작품이 보인다. 일본본토나 사할린에서 귀국한 동포들의 모습이다. 거처할 곳이 없어 부둣가에 임시로 머물면서 노천에 솥을 걸고 음식을 하는 모습이 잡혀 있다. 창고 근처를 꾸부정한 자세로 걷는 사람들의 모습하며, 웅크리고 앉거나 누운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은 어두운 색조로 불안을 잘 보여준다. 그 정황 자체가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부산항 여름, 31.1x61.7cm.1949><부산항 겨울, 31.1x61.7cm.1949><부산항 야경.44x33cm.나무판 위에 유채.1955><부산항 석양.나무판 위에 유채.44x33cm.1956><부산항 석양.32.1x45.3cm.1956><가일(假日)의 초가.44.7x70.6cm.1955><닭을 안은 여인. 나무판에 유채.56x86.cm.1956> 등에서 단호하고 결기 있는 테두리를 움켜잡고 있는 검은 선과 단순화시킨 형태를 지지하는 색조들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부산항의 모습, 우리의 일상을 잘 잡아내고 있다. 팍팍한 일상이 항구풍경에 의해 대신 드러난다. 초가를 그린 <가일의 초가>도 겨울 나목의 가지들이 검은 색을 드세게 들이밀면서 화면을 이루고 있다. 이 장면 역시 농촌의 곤궁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물론 이렇게 재현적이고 서술적 의미로만 그림을 읽을 일은 아니다. 그가 구사하는 선과 색채, 형태의 왜곡 등에서 오히려 이런 정황은 더 잘 표현되고 있다. 시대상황이나 역사적 연대기와 무관하게 그의 화면의 긴장과 상황은 사회적 의미들을 생성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닭을 안은 여인. 나무판에 유채.56x86.cm.1956>은 1952년작 <소녀와 닭>과 너무 유사하다. 이 작품을 기본으로 1956년 작품을 구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앙의 여인상 오른쪽에 놓인 인물과 왼쪽에 배치한 짐승을 제외하고는 배경과 머리 위의 닭은 그대로이다. 두텁게 올린 유채와 검은색 건물과 검은 까마귀가 배경이 된 이 작품은 닭을 안고 있는 것이 닭이라도 키워야 하거나 달걀 몇 개로 입성을 해결해야 하는 유일한 생계수단임을 보여주는 절박함을 드러낸다. 흰 닭과 검은 배경이 대비되고 붉은 하늘과 검은 건물, 흰 닭과 붉은 인물이 이루는 색상 대비는 긴장 그 자체를 연출한다. 더구나 어리둥절한 인물의 표정은 방황의 기색이 뚜렷하다. 풍경에서는 관조적 시선을 보이지만 인물은 표정 묘사가 거의 없는 생략된 형상인데도 불구하고 눈동자와 색채대비라는 단순한 대비적 구조가 한 시대 복판에서 만나는 당황스럽고 불안함을 보여주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개인의 심리적 정황을 넘어선 시대적 상황을 드러내준다. 이런 경향의 작품이 1960년대 이후 서정적인 풍경화로 바뀐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김종식의 대학시절의 학습기의 영향, 일본인 교수로부터 받은 교육과 일본의 미술계 상황을 심도 있게 연구해볼 필요가 제기된다. 일제 강점기의 학습기에 그가 보여주는 사회상황에 대한 신랄한 시선의 정체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는 분명 밝혀져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귀환동포와 부산항에서 보여주는 그의 표현은 개인적인 사회인식의 차원에서 읽기에는 1960대 이후의 변화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황에 대한 김종식의 인식과 표현 직접적인 영향이나 감화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1980년대의 시대상황을 드러내는 작업들과 많은 면에서 겹쳐진다. 정치적 상황에 대한 어떤 직접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특별한 상항을 연출하기보다 일상적인 풍경이나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념보다 개인적 삶의 형태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가진 개별성을 통해 전체를 넌지시 보아내는 시선들이 그런 점이다. 이념을 앞세우기보다 삶의 일상에 주목하고 그 일상을 통해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 부산형상미술이 가진 특성, 타지역의 민중미술이나 민족미술과 다른 점으로 부각된 그런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김종식의 작품은 아직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되어야 할 세계이다. 섣부르게 그의 세계를 추상이나 구상을 오간, 남방적 서정을 표현한 작가로 예단할 것이 아니라 본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해석 가능성을 제기해 보는 것이다.


    <글-강선학>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동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수학했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에서 10여년 일했다.
    1985년 수묵화로 부산 사인화랑에서 첫 전시 이후 11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비평과 창작, 그림과 책 사이의 접면에서 새로운 경계를 보아내려하고 있다.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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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동사항 - 년도, 활동내역,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년도 활동내역 비고
1977 한국현대미술대전, 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1973 부산시민회관 개관 경축 종합작품전, 부산시민회관
1972 한국 근대 미술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1962 4회 개인전, 충무 성림다방
1961 제 1회 경남 재건예술제 미술초대전
부산미술협회전
1959 부산 현대작가전, 부산시민회관
1958 개관기념전, 호수화랑
1955 1955~57 청록동인전, 아포로 다방
1953 1953~55 토벽동인전, 휘가로 다방
1949 부산 미술 협회전
1947 3.14기념 미술전
1946 개인전, 동래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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